<임준수영화산책>"인생"-뒤틀린세상속 공리의 또다른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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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여배우 공리는 확실히 눈물의 여왕이다.그녀의 눈물은 항상투명하며 담백하다.가슴으로 우는 그의 울음에선 흔히 있는 원망이나 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명감독 장이모가 만든 『인생』에선 공리의 또 다른 색깔의 눈물을 보여준다.그것은 가슴에 가득한 모성애의 눈물이다.
「인생」이라면 신파조의 유행가 가사같아서 별로 내키지 않는 영화다.그러나 장감독에 공리주연이라면 생각이 달라진다.극장안에서 가벼운 실망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극장을 찾은 것 같다.
『붉은 수수밭』의 격정이나 『홍등』의 감성을 기대했을 그들에겐 한 여인이 살아가는 끝없는 눈물의 세월이 지루할 법도 하다. 인생이라는 말은 한국과 중국에서 같은 의미로 쓰여지는 한자말이나 어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영화속의 공리 내외가 산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파조의 인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들의 평생은 사주팔자에 따른 운명적인 삶이 아 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떠도는 부평초같은 인생이었다.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의 여신이 아니고 시대환경이라는 것이 이 영화가전해주는 강렬한 메시지다.
공리 내외는 중국 현대사의 격동속에서 수난의 일생을 보낸 민초(民草)의 한 전형이다.평생토록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시대의 탁류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국공(國共)전쟁과 문화혁명등 시대가 소용돌이칠 때마다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데 이렇게 소시민의 삶과 시대상황을 연계시킨 것은 제왕을 잘 만나야 백성이 태평하다는 중국 전래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 같다.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숨긴 울음소리가 전반적으로 높다.그 아픔의 소리는 공리의 울음에서가 아닌 공리 남편의 노래속에서 나타나는데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한 그가 유랑극단의 인형극을 연출하며 목청껏 뽑는 가락은 마치 영혼의 울음처럼 폐 부에 와 닿는다.피를 토해내는 듯한 그 소리는 허무한 삶에 대한 통탄이라기보다 몹쓸 세상에 대한 절규처럼 들린다.
한마디로 부부의 울음이 잘 조화된 영화다.혈육을 잃은 모성애의 눈물과 뒤틀린 세상에 대한 가장의 눈물은 비록 성격이 다르다 해도 농도는 같다 할 것이다.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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