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대학살 일어날 것” 긴급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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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티베트(시짱·西藏)자치구의 분리독립 시위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번 시위의 진원지인 수도 라싸(拉薩)는 일단 평온을 되찾았지만 시위가 인근 쓰촨(四川)성 등지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진압 병력은 라싸를 비롯한 주변 지역으로 증파됐다.

중국 당국은 17일 강경 대응 방침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창바 푼콕(向巴平措) 시짱 자치구 주석은 시위대를 향해 최후 통첩 시한인 이날 자정까지 투항하라고 재차 촉구했다. 그는 “투항하지 않을 경우 가중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국은 “(분리 독립 요구 시위는) 국가를 분열시키려는 세력들의 폭력적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다.

중국 외교부도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은 흔들림 없이 주권과 영토를 수호할 것”이라며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해외 공관을 공격하는 것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사회는 중국의 자제를 촉구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중국 정부가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크 맬럭 브라운 영국 외무차관은 “중국이 올림픽을 망치지 않으려면 이번 사태를 고도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무장경찰은 18일부터 일제 수색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검거선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라싸에는 한국 교민 10여 명이 아직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들의 신변 안전도 우려되고 있다.

인도의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 정부는 “투항 시한이 지나면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내용을 담은 긴급호소문을 이날 발표했다. 망명 정부는 또 “10일부터 벌어진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티베트인 수백 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관계기사 16면>

티베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쓰촨(四川)·칭하이(靑海)·간쑤(甘肅)성 등 주변 지역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쓰촨성 북부 아바 장족(藏族)자치주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은 이날 “인민해방군 차량 수백 대가 밤새 시내로 진입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전날 경찰이 동조 시위대에 발포해 7명이 사망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간쑤성 남부 간난(甘南) 장족 자치주에서도 시위대 400여 명이 달라이 라마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가두 시위를 벌이며 정부 청사에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고 자유티베트캠페인(FTC)이 전했다. 티베트 학생 100여 명은 간쑤성 란저우(蘭州)의 베이시(北西)소수민족대학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라싸와 연결되는 칭짱철도가 지나는 칭하이성 시닝(西寧)의 기차역에선 티베트 시위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엑소더스(대량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오후 라싸 행 N917호 열차는 오후 8시28분(현지시간)에 역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곳곳에 빈 자리가 많았다. 역사 주변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라싸로 들어가는 승객은 크게 줄었고, 시닝으로 나오는 열차에는 눈에 띄게 승객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신변 위협을 느낀 중국인들과 외국인 여행객들이 대거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칭짱철도 열차표 판매를 대행해온 한 여행사 관계자는 “17일 아침부터 대리점의 열차표 판매가 금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차표를 사려면 역으로 직접 가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라싸에서 시위가 터지면서 뒤늦게 열차 표 구입 단계부터 신분증 검사를 하는 등 보안 검색이 대대적으로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시위가 인근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인터넷 등 통신망 일부를 차단했다. 당국은 미국의 인기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 유튜브에 라싸 시위 장면이 담긴 동영상 10여 개가 올려지자 중국 네티즌들의 접속을 막았다. 중국에 기반을 둔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56닷컴(www.56.com)이나 여우쿠닷컴· 투도우닷컴 등에는 티베트 관련 동영상이 전혀 올라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자세다. 느긋할 수 있는 이유는 ‘동화 정책’에 있다. 한족을 티베트인 사이에 이주시키는 동화정책은 티베트인들끼리 뭉치는 ‘시멘트 효과’를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중국의 고민도 읽힌다. 무력 진압은 국제사회의 반중 정서를 확산시키고 올림픽 보이콧 운동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진세근, 시닝=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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