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와타나베 妄言-역사 부끄럼도 모르는 정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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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前외상의 발언에 일본인인 우리도 놀랍고 어안이 벙벙하다.자민당 실력자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라면 과거를 반성하는 국회결의고 뭐고 할 계제조차 못된다.와타나베의 발언은 韓日합방조약은 원만히 작성된 국제조약 이므로 법률적으로 식민지지배에 해당되지 않으며,전후 50년 국회결의에「식민지」와「침략」이라는 문구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와타나베의 발언엔 명백한 오류가 있다.합방이 합법이든,비합법이든간에 韓日합방은 한 나라가 독립을 잃고 이웃나라에 의해 정치.경제.군사.문화적으로 지배당한 역사적 사건이다.통상적으로 우리는 그같은 상태를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합방조약이「원만히」맺어졌다는 주장도 비상식적이다.일본은 1910년 조약이 정규절차에 의한 조약으로 체결 당시엔 유효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강제에 의한 부당한 조약이므로「당초부터 무효」라는 주장이다.
이 입장의 차이가 65년 국교정상화교섭때 큰 문제가 됐다.마지막에 모호한 표현으로 타협되었지만 이것은 견해차이를 덮어둔데불과하므로 『합방조약을 상호 인정했다』는 와타나베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다.합방까지는 몇개의 단계를 거쳤지만 가장 악명높은 것은 외교권을 빼앗은 1905년 韓日보호조약이다.조약체결을 거부한 대한제국 황제에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거부하면 더 곤란한 불이익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조선측에 일부 친일파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합방에 이르기까지의길은 「원만」과는 거리가 멀다.와타나베는 이런 경위를 어디까지알고 있는지 모르겠다.원래 멋대로 지껄이는 습성이 있고,이번에도「원만」이란 표현만은 나중에 취소했지만 외상 까지 지낸 사람의 발언치고는 조잡하기 짝이 없다.
韓日국교정상화 기본조약이 조인된지 오는 22일로 만 30년이된다.걸핏하면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 일본인의 의식도 차츰 변해 최근에는 피해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겸허함과 여유도 생겨나고 있다.
93년 韓日정상회담에서 창씨개명(創氏改名)등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당시 총리의 발언은 그같은 추세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한국측으로부터도『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자』는 말이 자주 들려오게 됐다.그로부터 2년도 채 못돼 정치가들의 잇따른 문제 발언과 국회결의에 대한「반대」합창으로 한창 진전돼가던 양국간 우호기운이 엉망이 됐으니 슬프고도 분하기 그지없다.
전후 50년 국회결의를 둘러싼 조정이 바야흐로 막바지에 도달했다.그런 와중에 아시아와의 우호를 진지하게 고려해 역사를 정확히 바라보는 능력조차 없는 정치가가 아직까지도 활개를 치고 있는 전후(戰後)50년의 일본이 와타나베 망언을 계기로 분명히부각된 것이다.
[정리=盧在賢 東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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