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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의 불사조’ 매케인, 마지막 승부를 기다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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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10면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최근 텍사스주를 방문해 성조기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휴스턴 AP=연합뉴스]

미국 언론의 관심이 민주당 경선의 주역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간의 혈투에 집중되고 있다. 마치 차기 대통령이 두 사람 중 한 명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실상은 복잡하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역시 강력하다. 세 명은 박빙의 대접전을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13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존 매케인은 오바마에게 3%포인트(44% 대 47%), 힐러리에게 2%포인트(45% 대 47%) 뒤지고 있다. 요동치는 대선 정국을 감안하면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격차다.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매케인이 제44대 대통령이 된다면 좀 부담스러워할 나라가 있다. 베트남이다. 1967년 해군 소속 조종사였던 매케인은 월맹의 화력발전소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격추된 악연이 있다. 전쟁포로로 잡혀 5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악연도 인연이다. 사실 오늘의 매케인을 만든 것은 베트남전쟁이다.

매케인의 부친이 미 해군 제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월맹 당국이 그를 풀어주려 했으나 매케인은 전우를 놔두고 혼자 풀려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고문도 당했고 2년간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파리평화조약 체결 뒤인 73년에야 매케인은 석방됐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베트남전 영웅이 됐다. 그 덕택에 지금 대권 가도를 순항하고 있다.

매케인은 명문가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해군 4성 제독이었다. 어머니는 석유 재벌의 상속인이다. 어머니가 새 드레스를 사러 나갔다 벤츠 승용차를 한 대 사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해사 생도 매케인은 파티광에다 플레이보이였다. 그는 해사를 899명 중 894등으로 졸업했다. 미래에 거물 정치인이 될 소질은 다분히 있었다. 그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 때도 화가 나면 마치 죽어버리겠다는 듯 숨을 참으며 기절한 적도 있다.

매케인은 불사조다. 해군 복무 중 여러 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정치 입문 후에도 여러 번 생사의 기로에 섰다. 지난해 7월 낮은 지지율과 선거자금 부족으로 경선 포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다. 대선 캠프 인원도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여야 했다.

전쟁터에서처럼 정치판에서도 행운이 잇따랐다. 공화당 대선 주자 중 줄곧 선두를 달리던 루돌프 줄리아니는 경선 초반 현실성 없는 선거전략으로 낙마했다. 미트 롬니는 모르몬교도, 마이크 허커비는 지나친 보수 기독교 색채 때문에 낙마했다.

매케인의 대선 전략은 바로 자신의 소신이었다. 독불장군(maverick)이라는 별명답게 공화당 당론에 어긋나는 주장을 수차례 펼쳐 왔다. 1996년 공화당원 중 유일하게 통신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2002년 그가 주도한 매케인-페인골드 법안, 지난해 추진한 포괄적 이민개혁 법안도 공화당 주류에겐 인기가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안에도 두 차례(2001년, 2003년) 반대표를 던졌다.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가 하면 다른 공화당 인사들과 달리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매케인은 자신이 ‘레이건 공화당주의자’라고 강조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낙태를 반대하며 국가안보에 대한 선명한 보수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그의 보수 성향을 반영해 무당파와 민주당원에게 인기가 있다. 2004년 대선 당시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러닝메이트를 제의했다는 설까지 나돈다. 그 때문에 많은 골수 공화당원은 그를 의심한다. 2000년 대선 당시 그가 기독교 우파를 일컬어 ‘불관용의 대리인’이라고 몰아세운 것도 이런 의구심을 부추긴다. 부시 대통령이 12일 “매케인은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보수주의 어젠다를 가지고 있다”고 거든 것도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그는 본선 레이스를 이미 시작했다. ‘고령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를 다음달 15일 모두 공개한다. 민주당의 ‘집안싸움’에 집중된 언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해외 순방에도 나섰다. 18∼21일 이스라엘·요르단·영국·프랑스를 방문해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계획이다.

선거전에 쓰일 자금 문제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1월 말까지 오바마는 1억4100만 달러, 힐러리는 1억3800만 달러를 모았다. 반면 매케인은 5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주 뉴욕·보스턴·필라델피아·시카고를 돌며 ‘모금 투어’를 했다.

매케인에게 누가 더 편한 상대일까. 둘 다 까다롭다. ‘정권교체를 하겠다’며 오바마든 힐러리든 무조건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일단 오바마가 더 껄끄럽다고 관측한다. 가장 큰 이유는 오바마의 ‘변화’ 구호가 유권자에게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매케인으로선 자칫 ‘부시 행정부 3기’를 이끌 ‘부시 속편’으로 보일 수 있다. 미국의 최대 노동자단체 AFL-CIO는 “매케인의 경제정책은 실패한 부시의 정책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고 공격했다. AFL-CIO는 매케인의 유세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경제정책을 추궁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힐러리가 매케인의 상대가 되면 어떨까. 힐러리는 각종 사안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힐러리에게는 ‘안티 세력’이 많다. 힐러리는 “진실성이 없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언행을 달리한다”고 비판받는다. 반면 진실성 하면 매케인이다. 그는 미시간주에서 경선할 때에도 “영원히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일자리도 있다”며 껄끄러운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비록 ‘미시간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롬니에게 졌지만 매케인은 전국적인 신뢰를 얻었다.

‘베트남전 영웅’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소신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매케인의 최대 정치적 자산이다. 따라서 매케인의 정적들은 그가 기성 정치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폭로하려고 애쓴다. 지난달 20일 뉴욕 타임스는 매케인과 로비스트 비키 아이스먼 간에 8년간의 염문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반(反)로비스트 정치인을 자처해온 매케인에게 상당한 타격이었다. 14일에도 미국 언론은 일제히 매케인 선거 캠프에 로비스트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오바마는 13일 “감세에 반대하던 매케인이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인가”라고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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