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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능력 있는 자, 먼저 부자 되라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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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둥루 밤거리 모습. 1978년 덩샤오핑이 선부론을 내세우며 경제개혁을 시도한 이래 중국은 역사상 전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변하며 경제 강국의 자리에 섰다. [중앙포토]

선부론
던컨 휴잇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랜덤하우스
644쪽, 1만9800원,
원제 『Getting Rich First』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는 중국, 그 변화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1인당 GDP가 얼마나 증가했다는 등의 진부한 설명보다는 이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 더 실감을 안길 것 같다.

“중국의 한 전통 건축 전문가는 (그가 사는 중국의) 주변 환경들이 너무 빨리 변하는 통에 정신이 없고 피곤해서 일 년에 한 번씩 유럽에 가서 한 달씩 쉬고 온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 몰고 온 중국의 변화상을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재치 넘치는 표현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중국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또 그 덕택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기에 유럽에 가서 한 달씩 놀다 온단 말인가. 부럽지만 이런 이들이 중국에 적지 않다. 개혁·개방 정책으로 등장하게 된 중국 민영기업의 ‘사장님’ 수만 이미 6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 책은 “이미 변화된, 그리고 계속해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왜냐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중국인들은 해외에 나갈 때마다 중국과 중국 사회에 대한 외국인들의 무지에 대해서 화가 난다. 많은 외국인들은 중국 사람들이 아직도 청 왕조시대와 문화혁명 사이의 중간 정도의 낙후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86년 중국에 도착해 20년 넘게 중국에 살며, 중국 여인과 결혼하고 또 영국 BBC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저자 던컨 휴잇은 지난 20년 간 중국이 사회 각 분야에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이런 변화상을 중국 서민 개개인의 삶을 통해 실감 나게 들여다 보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개발에 밀려 17세기에 지어진 집에서 살다가 쫓겨나버린 한 베이징 노인의 분노, 부모를 속이며 동거에 들어간 청춘 남녀가 일으키는 조용한 성(性) 혁명 등 중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빚어내는 사회 각 분야의 변화상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오랜 기간 현장을 발로 뛰며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내면을 하나하나 진단해 가는 글쓰기는 중국의 변화를 다룬 많은 책들과의 차별화를 보여주는 강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같은 중국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저자는 그 출발점을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에서 찾는다. 80년대 초 덩샤오핑은 “전국 모든 지역, 모든 국민들이 한꺼번에 다 부자가 될 수는 없으니 국민들 일부, 그리고 국가 일부 지역만이라도 먼저 부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능력 있는 자, 먼저 부자가 되라’는 선부론이 변화의 기폭제였다는 것이다.

변화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부동산 투기가 어떤 이에겐 축복을 가져 오지만, 또 다른 어떤 이에겐 고통을 가져다 줌을 이 책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변화에 수반된 어두운 그림자에 주목하며 중국이 과연 이를 어떻게 풀지에 대한 궁금증을 숙제로 남긴다. “과연 중국은 막혀 있는 길을 돌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책 마지막 구절이 던지는 질문이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용한 일부 중국어의 경우 괄호 안에 한자까지 적여주는 친절함이 결여된 점이다. 예를 들어 ‘두이시앙’은 ‘두이시앙(對象)’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변화를 다룬 책들의 한계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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