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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국 경기침체,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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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주택시장 불안과 신용위기가 미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지출까지 위축되는 조짐이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 경제 침체는 세계적 충격을 동반한다.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미국의 2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전달 대비 6만3000명 감소했다. 2개월 연속이다. 고용감소는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의 경제활동이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용통계는 월가가 경기 향방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당장 다우지수부터 1만2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는 지난해 4분기 주택압류비율이 사상 최고인 0.83%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주택담보대출의 연체비율도 5.82%로, 22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거듭된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택시장이 침체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서브프라임 부실이 우량 주택담보대출까지 전염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세계적인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 계열의 칼라일캐피털과 모기지 업체인 손버그마저 손을 들었다. 마진콜(담보 부족분 충족 요구)에 응하지 못해 시한 연장을 요청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보증한 최우량 등급 채권에 투자한 회사들이다. FRB가 기준금리를 3% 수준까지 내리고, 필요할 경우 직접 신용을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시점에서 심각한 마진콜 사태가 터진 것이다.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부실이 수습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낙관론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불안심리가 퍼지면 금융회사들은 부족 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금 회수에 나선다. 이렇게 되면 돈을 빌려 파생상품에 투자한 펀드들은 투자자산을 내다팔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다시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환매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최근 한국시장의 외국인 자금 이탈도 이런 현상과 무관치 않다. 금융시장을 짓누르는 요인은 미국 경기침체나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국제유가와 원자재 쇼크까지 겹쳤다. 인플레이션 먹구름이 덮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은 악재들이다. 이미 고성장-저물가 시대가 끝나고 저성장-고물가 시대가 도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 우리 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미국발 경기 둔화와 중국 인플레, 고유가와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을 꼽았다. 기회요인으로는 ‘탄탄한 내수 성장세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민의 결집력과 기대감’을 들었다. 대외 리스크에 대한 정부의 우려는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에 비해 기회요인은 여전히 기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를 기대해 왔다. 특히 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해주면 그만큼 충격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9조5000억 달러의 미국에 비하면 중국의 소비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 수준이다. 아직은 미국 시장을 보완할 수준이 안 된다. 한동안 중국의 값싼 제품은 세계적 저물가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경제의 성장과 소비확대가 오히려 전 세계 인플레이션의 근원이 되어 가는 현실이다.

지금으로선 우리 수출이 유지되고 내수 성장세가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하지 않도록 금리정책도 세심하게 다루어야 한다. 어차피 고유가와 미국 경기 침체는 세계적 현상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의 운명이 판가름나게 된다. 잘나갈 때는 실수를 해도 묻히지만 지금은 작은 잘못도 큰 후유증을 남기는 아슬아슬한 시기다.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경제와 금융정책은 더 세심해져야 한다.

장범식 숭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