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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골프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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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6년 4월 중국골프협회와 고궁박물원은 12세기 전반 북송 시대에 골프의 원형인 구기 ‘추이완’이 유행했다고 공식 발표하고 나무로 된 공과 채를 복원해 소개했다. 골프의 기원은 14~15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성행한 구기라는 게 기존 설이지만 진짜 원조는 중국이라는 것이다. 13세기 간행된 『환경(丸經)』에 현대와 흡사한 경기규칙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홀은 3타를 기준으로 하며 초구를 티에 올려놓을 때 외에는 홀에서 빼낼 때까지 공에 손을 댈 수 없다. 『환경』은 선수들이 예의를 존중하였고, 상대방 입장에서 플레이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 해석은 엄격히 금했다고 전한다.

서양의 가장 오랜 공식 기록은 1457년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의 명령을 담은 문서다. 국민들이 골프에 너무 몰두해 국방에 필요한 무예 연습과 신앙생활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12세 이상 50세까지의 모든 국민에게 골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금지령은 1491년까지 여러 차례 내려졌지만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왕이 측근의 꼬임에 빠져 어느새 골프광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도 대부분 골프광이었다. 재임 중인 1958년 세계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창설한 아이젠하워는 60년 5월 1일 미국 U-2 정찰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돼 조종사가 체포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골프 친 사실이 드러나 호된 비난을 받았다. 그 후임인 케네디도 애호가였지만 “민중의 챔피언이 되기를 갈망하는 대선 후보가 부자들의 게임에 빠져 있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고, 취임 후에도 골프 일정을 철저히 감췄다. 클린턴은 ‘(휴가 동안) 골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캠핑을 한다고 해놓고 몰래 골프를 쳤다.

한국에서 골프는 공직자 기강의 잣대처럼 돼버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재임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해 사실상 금지령으로 받아들여졌다. 김대중 정부는 골프에 시비를 걸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선 이따금 ‘자제령’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에선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발언이 금지령으로 받아들여지자 이동관 대변인이 서둘러 진화했다. “ 자기가 적절한가 검토해 스스로 판단할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들은 ‘강부자 내각’이란 비판을 생각해서라도 조심함이 어떨지. ‘강부자 골프’ 내각이란 꼬리가 추가돼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