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세계석학과의 대화-脫냉전시대 어디로가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中央日報는 25일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내한한 러시아의 핵심적정치인이자 지식인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러시아국영TV위원회위원장과 미국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를 본사로 초청,탈냉전시대의 표류하는 국제사회에 대한 평가및 미래의전망과 남북한 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장래에 대한 대담기회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李교수=냉전이 종결됨으로써 세계의 관심은 군사.안보문제에서 경제발전의 문제로 이전되고 있습니다.좌담에 참여하는 두분은 냉전구조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를경험하고 관찰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우선 현재의 세계가 냉전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으로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야코블레프 위원장= 1985년 러시아에서 스탈린주의를 제거할 때까지의 냉전시대를 우리는 제2차세계대전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저는 냉전기간에 美.蘇 양측의 상호비방 선전을 관찰하면서 그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불행히도 美.러시아 두 나라에는 아직까지 상대를 불신하는 세력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걱정됩니다.
▲스칼라피노 교수=2차대전의 전운(戰雲)이 지배하던 30년대당시 미국에는 외부에 대한 고립주의와 개입주의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강화됨으로써 미국이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 다.
반대로 최근들어 미국은 냉전시대에 보여주던 자유세계 수장으로서의 사명감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따라서 지금 탈냉전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간 이견을 조정할 수 있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李=수십년간 지속된 냉전 기간에 美.蘇 양국은 각각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각자 자국의 입장에서 득과 실을분석해 주시죠.
▲야코블레프=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형태의 권력독점을 우려하는입장입니다.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생각이 바뀌는 것이 원칙입니다.이런 관점에서 유럽의 능동적인 역할은 매우 유익할 것이고 러시아도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이같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 믿습니다.냉전의 종결과 동시에 등장한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러시아입니다.또 러시아에서 만약 민주주의가 실패한다면 미국 역시 매우 어려운 시대를 맞게 될 것 입니다.
▲스칼라피노=냉전으로 인해 미국과 소련은 부담스러운 비용을 치러야만 했습니다.지금 보면 냉전의 승자는 美.蘇 어느 쪽도 아닙니다.안보와 경제적 재건을 보장받은 동맹국들이 바로 냉전의승자들이죠.
미래 미국의 역할에 대해 사람들은 두가지 상반된 예측을 합니다.일부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의지나 능력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다른 일부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수많은 국내문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에 국제안보에 드는 비용을 다른 국가와 분담하려 할 것이지만 지배적인 세력은 아닐 것입니다.예컨대 보스니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이것이 우리시대의 본질입니다.
▲李=동아시아에는 미국.러시아.중국.일본이라고 하는 4대 강국이 있습니다.탈냉전시대의 동아시아 권력구조가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야코블레프=저는 5~6년전 일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해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죠.
오늘날 동아시아의 과제는 분쟁조정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죠.
저는 특히 남북한간의 충돌이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우려합니다.과거에 비해 그 가능성은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북한을고립시키면 예상치 못한 폭발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험을 봐도 신생 소련을 서구국가들이 고립시켰기 때문에 결국 스탈린 정권을 탄생시켰고 유지시켰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중국도 동아시아의 미래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저는 중국의 근대화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스칼라피노 교수가 언급했듯이 중국이 해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저는 이런 점에서 「하나의 유일한 중국」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李=야코블레프 위원장은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하셨고 이에 대해서는 스칼라피노 교수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일부 학자들은 1백50년을 주기로 국가흥망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지요.예를들어 19세기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쇠퇴한 뒤 일본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고 한국이 일본의 뒤를 이어 발전했으며 이제 다시 중국의 전성기가 돌아온다는 견해입니다.다른 한편 미국의 헌팅턴과 같은 학자는 21세기가 문화권간의 충돌로 점철될 것이 라고 예견했습니다.
▲스칼라피노=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모순된 경향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아.
태지역은 문화적 재기와 경제적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순수한의미의 동아시아 문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화는외부적인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었습니다.도쿄(東京).서울.상하이(上海).자카르타 어디를 가도 외국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젊은이들의 생활을 보면 특히 그렇죠.매 우 흥미로운 패러독스는 세계적 통합과 해체의 운동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저는 헌팅턴과의 논쟁에서 문명간의 충돌보다는 국가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더 심각하다고 주장했습니다.국가간의 관계는 오히려과거에 비해 안정됐다는 것입니다.국가간 전쟁의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졌습니다.
▲李=동아시아 권력구조에서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수 있습니다.중국은 경제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덩 샤오핑(鄧小平)의 사망이후 중국의 정치적 안정은 유지될 것인지,그리고 중국이 최고 지도자가 사라진뒤에도 위기상황을 관리할 능력을 갖고 있을까요.
▲야코블레프=러시아에서는 지금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대해서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데 고르바초프와 저는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제 주장은 시장경제는 권력의 이동이라는 결과를 낳고 이로써 권력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입니 다.상부로부터의 억압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죠.중국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역사의 낙오자가 되고 말것입니다.중국의 지도자들이 현재 개혁을 주장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가로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칼라피노=권력분산은 국가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그러나 중국의 경우를 보면 권력분산이 너무 심해서 중앙정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입니다.덩 샤오핑(鄧小平)은 지금까지 중앙과 지방을 연 결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 중국을 이끌어 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鄧小平이 사라진 중국에서는 민족주의가 마르크시즘을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하지만 중국은 중대한 내부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확장을 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李=한반도에서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고있는데 이것은 정치적인 모순이라고 생각됩니다.러시아는 남.북한을 같은 위치에 놓고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외무부 관료들의 생각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야코블레프=북한은 최근까지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력한 동맹국을 갖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국제상황의 변화로 북한은 갑자기 외톨이 신세가 되었죠.북한의 지도자들은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 같이 미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도 국제적인 변화 를 충분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단계적으로 변화해 나가야 할 사안이며 북한을처벌한다는 의미에서 고립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李=야코블레프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코블레프=北.蘇조약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개인적견해로는 그 조약은 이미 사문화 되었다는 것입니다.북.소조약은냉전시대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체결되었습니다.러시아는이를 잘 알고 있지요.
▲스칼라피노=남북관계에 있어 필요한 것은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고 북한이 점진적으로 변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경제적 개혁을 원한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시장경제를 지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죠.남한정부는 이런 점 에서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 종교인들의 방북승인이나 일부 재벌의 대북투자승인을 들 수 있습니다.남한은 앞으로도 급격한 변화보다는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변화를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李=마르크시즘이 붕괴된 21세기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야코블레프=저는 정치이론적인 측면에서 계급투쟁.프롤레타리아의 독재.혁명등의 개념을 모두 거부했습니다.21세기에는 공동체가 개인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일이 재생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칼라피노=제 나이에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것 같습니다.또 21세기에는 금세기와 같은 세계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될 것입니다.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구폭발이나 환경문제를해결하는데 기여할 것입니다.다만 정부가 과학과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에서 말이죠.끝으로 세계는 상호의존성이 강화되어 아주 작은 분쟁도 매우 높은 비용을 치르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趙泓植외교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