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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철거 감독소홀로 시민에 석면분진 노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대사관 철거 공사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석면 분진이 무방비로 명동일대 인파와 건물 사이에 휘날리고 있다. 배출된 석면의 처리 업무를 감독해야 할 행정기관은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철거 전 옛 중국대사관 건물. 중국대사관은 옛 대사관 건물을 철거하고 같은 자리에 10층~24층 두 동 짜리 대규모 대사관을 신축할 계획이다.

서울 중구 명동2가 83-7번지에 위치한 옛 중국대사관은 연면적 4487.84㎡의 7층 짜리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담장 하나를 두고 국내 최대 상업중심지 명동과 맞닿아 있다. 명동에는 경찰 추산 기준으로 외국인 관광객 하루 8000~1만명을 포함 일일 유동인구 80만~120만명에 이른다. 상가번영회에 따르면 명동에는 상가만 1000여개가 있다. 석면에 노출될 경우 그만큼 피해가 커질 수 있어 철저한 감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10일까지 서울지방노동청(청장 장의성)은 중국대사관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석면이 제대로 처리되는 지를 감독하기 위한 현장 실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노동청은 지난달 12일 건물 철거업체가 요청한 석면 처리 신청을 허가해줬다. 하지만 노동청은 철거업체가 15일까지 마치겠다는 작업계획서 대로 석면이 안전하게 처리되는지 감독하지 않았다. 노동청의 산업안전 감독관은 공사현장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현행 건축법상 연면적이 100㎡ 이상인 건축물은 철거 전에 반드시 석면 함유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도록 돼 있다. 석면 제거 작업도 석면이 건축물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건축물을 밀폐한 후 하도록 하고 있다. 석면은 또 특수 폐기물 봉투에 넣어 배출해야 한다.

서울 중구청(구청장 정동일)은 석면 처리 허가권자가 아니라며 현장에 나가보지 않았다. 중구청 건축 담당자는 “석면 처리 허가는 서울지방노동청이 내준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물 소유자는 철거 7일 전까지 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구청은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중국대사관은 이를 준수하지 않았음에도 중구청은 대사관이라는 이유로 과태료 부과를 하지 않았다. 신고서 양식 17번 항목에는 건축물 석면함유 유무를 표시하도록 돼 있다. 구청 담당자는 지난달 4일 건축물 철거신고서를 접수했다면서도 철거신고서에 표시하게 돼 있는 석면함유 유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중구청 담당자는 건축물 철거신고서를 기자에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철거 신고서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건축물 철거 과정에서 공기 중에 날리는 먼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할 중구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8일 기자가 대사관 주변을 찾아갔을 때 포크레인과 굴삭기가 굉음을 내면서 대사관 철거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대사관 건물은 이미 상당 부분 철거되고 1~3층 구조물 일부가 남아 있었으며 철거과정에서 발생한 뿌연 가루들이 바람을 타고 담장 너머 명동 중심 거리 방면으로 날아 가고 있었다. 철거업체 현장소장은 “외국서 새로 도입한 철거 장비를 쓰다 보니 먼지가 많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석면은 보온성과 단열성이 뛰어나 건축자재로 사용돼 왔으나 폐질환을 유발할 위험성으로 인해 정부에서 제1종 발암물질로 지정한 위험물질이다. 전문가들은 명동 옛 중국대사관 건물이 30년 전에 지어져 건축 당시 지붕과 천장, 단열재에도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행정당국이 철거공사 감독을 소홀히 하는 사이 명동의 100만 시민과 관광객들은 석면 분진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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