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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喜 추사체는 中북비체의 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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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곧은 소리는 조정에 남아있고,빼어난 글귀는 동쪽나라까지 가득하네(直聲留闕下 秀句滿天東).』 간송미술관이 자랑하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작품 중 하나인 이 대련(對聯)은 추사가 37세때 연행사신을 따라가는 동생편에 당시 청나라 고증학자인 고순(高.1765~1832)에게 써보낸 것이다.고순은 당시 청나 라 대석학이었던 고증학자 옹방강(翁方綱)의 제자다.
추사와 고순간의 교우를 나타내는 이 대련은 그후 베이징(北京)에 전해지다 일제때 베이징에 있던 박석윤(朴錫胤)의 손을 거쳐 국내에 들어와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선생이 구득,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全暎雨)부설 간송미술관은 제48회 정기전으로 추사체 형성에 관련된 추사와 중국학자의 교류관계를 말해주는 이같은 자료만을 모은「추사를 통해 본 한중묵연전(韓中墨緣展)」을 6월4일까지 열고 있다.
전시작품 대부분은 추사가 24세때 중국에 사신으로 가 깊이 사귀었던 옹방강.완원(阮元),그리고 그들의 제자들과 주고받은 작품과 편지.그림들이다.
추사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옹방강은 청대(淸代)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였다.그는 경학과 금석학에 두루 뛰어났고 글씨는 법첩을 중시하던 당시 중국 서예계의 일반적 풍조와는 달리 옛 비석에 남겨진 고대 서체를 서예의 정통으로 삼았다 .
옹방강과 주학년(朱鶴年).장문도(張問陶).섭지선(葉志詵).오숭량(吳嵩梁)같은 그의 제자들을 가리켜 북비파(北碑派)라고 부른다. 추사는 이들과 교우하면서 이들의 연구업적과 성과를 그때그때 주고 받았으며 거기에 서예에 대한 자신의 천품(天稟)을 더해 북비파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북비서체를 재현해 냈다.그것이 바로 추사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중국에서 추사에게 건너온 물건들은 북비파의 근본이 되는 여러 고비(古碑)의 탁본이나 스승옹방강이 존경했던 소동파(蘇東坡)초상 같은 것이었고,중국측에서원했던 것은 자신들의 이론을 글씨로 입증해 보 인 추사체였다.
앞서의 『直聲留闕下…』대련이 중국에 건네진 추사글씨를 대표한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소동파초상 3점은 옹방강이 그의 아들을 통해 추사에게 건네준 물건들이다.
간송에 앞서 추사연구를 위해 추사와 중국학자간의 교류자료를 모았던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藤塚린)의 소장품은 전쟁중 일본에서 폭격당해 상당수가 소실된 것으로 전한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崔完秀)연구실장은 『추사체의 형성과정에서 추사와 중국 고증학자들간의 친분과 교류는 빼놓을 수 없다』며 『이번 전시는 추사체 형성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이 됐던중국학자들과의 학연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기획 의의를 밝히고 있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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