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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이대진 1안타 완봉 이젠 당당한 虎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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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대진(李大振.해태)은 이제야 타자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떨칠 수 있게 됐다.
노쇠한 팀마운드에 자신이 차지하는 비중을 인식하게 됐고 19일엔 OB를 상대로 1안타 완봉승을 거둬 투수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됐기 때문이다.
해태의 실질적 에이스로 현재 4승1패를 기록중인 이대진은 과거 박노준(朴魯俊.쌍방울),김건우(金健友.LG코치)처럼 투.타를 겸비한 선수다.93년 프로에 처음 입단했을때만 해도 해태 김응룡(金應龍)감독은 李에게 3루수 훈련을 시켰다 .「제2의 한대화(韓大化.LG)」로 키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목포진흥고 3학년때 전국대회 타율이 무려 4할8푼1리(54타수26안타)였고 그해 6월24일 광주일고와의 대붕기 광주예선대회에선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슬러거였다.
더욱이 진흥중학교 3학년때인 89년6월18일엔 충장중학교와의경기에서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해 투수보다 타자로서의 재능이 더 빛났었다.
그러나 93년 시즌 개막을 앞둔 쌍방울과의 훈련경기에서 우연히 투수로 등판할 기회를 얻었다.고교시절 투수로도 활약했다는 사실을 안 金감독이 시험삼아 등판시켰던 것.
그 경기에서 4타자 연속 삼진을 잡는등 3이닝동안 6개의 삼진을 빼앗은 덕분에 李의 운명은 갑작스럽게 타자에서 투수로 탈바꿈하게 됐다.
평균시속 1백45㎞를 넘는 빠른 공과 낙차큰 커브로 데뷔 첫해 10승을 거두고 지난해에는 7승을 거둬 투수로의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타자로 나서도 최고의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아쉬움이 항상 李를 괴롭혔다.
아버지와 金감독의 설득끝에 타자에 대한 미련은 25세까지 접어두기로 아버지와 약속까지 했다.아버지 이재열(李在烈)씨는 과거 배재고.성균관대에서 투수와 유격수로 활약했던 선수출신.
현재 21세의 이대진은 4년안에 최고 투수가 된다면 계속 투수를 하고 만일 최고투수가 안된다면 그동안 응어리졌던 타자에의꿈을 펼친다는 야무진 계획을 숨기고 있다.
〈金弘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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