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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워치] “최고제품이란 없다 … 어제보다 나은 게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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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병법의 대가로 알려진 손자(孫子)는 싸움터에서 “병력의 운용을 물과 같이 하라(兵之勢若水)”고 가르쳤다. 물은 어떤 존재일까. 우선 고정적인 형체가 없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득 찬 곳에서 빈 곳으로 늘 움직인다. 병법의 요체는 정규군과 비정규군을 함께 조합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 손자의 강조점은 비정규군을 뜻하는 기(奇)에 있다. 고정된 양식과 상황보다는 변화와 창의적인 사고를 중시했다.

앞에서 든 손오공과 손자에서 풍기는 핵심적인 코드는 변화다. 모두 싸움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그중에서 강조하는 것은 ‘늘 변하라’는 주문이다. 따라서 중국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변신이 매우 큰 덕목이다. 우리는 변절과 입장을 바꾸는 것쯤으로 여겨 이 변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데 주저하게 마련이지만, 중국 비즈니스맨은 결코 그렇지 않다.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은 하이얼(海爾)이다. 요즘 한국의 가전 시장을 강타하면서 강력한 경쟁력을 선보이고 있는 이 중국 최대 기업이 강조하는 첫째 가치는 무엇일까. 하이얼의 최고경영자 장루이민(張瑞敏)이 내세운 것은 일단 ‘창신(創新)’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중간에 도태된다는 강박관념을 전제로 한 구호다.

하이얼의 기업 이념 항목에는 “없는 것에서 있는 상태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큰 것에서 강한 것으로, 중국에서 세계로”라는 말이 가장 눈길을 잡아 끈다.  

광둥성 최대 전자업체인 메이디(美的)의 허샹젠(河享健) 주석이 즐겨 보는 책은 삼국지다. 신노동법 시행으로 임금이 오르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을 삼국지에서 찾고 있다. 그는 새해 간부들과의 간담회에서 “삼국지를 보면 회사의 혁신 방향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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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국 상인들의 행위도 다를 게 없다. 우선 중국 상인 중 변화에 능하기로는 용방(甬幇)을 으뜸으로 친다. 저장(浙江)성 닝보(寧波) 상인들이다. 변신에 능하고 사업수완이 탁월해 청 말 상하이(上海)의 상권 대부분을 이들이 잡았을 정도다. 위차칭(虞洽卿)은 당시 용방의 거두였다. 그는 끊임없는 변화로 상대를 제압했는데 비결은 연구와 유연성이었다.

사업에 앞서 상대 기업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 뒤 회사를 변신시켰다. 그리고 사업에서는 강·온정책을 구사했다. 훗날 그는 용방의 상인들에게 도덕경(道德經)을 배우라고 요구했다. 도덕경에 나오는 ‘굽으면 온전해지고 구부러지면 펴진다(曲則全 枉則直)’는 노자(老子)의 말에서 곡직(曲直)의 병용을 터득하라는 주문이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변하라는 얘기다. 지금도 닝보 상인들은 그의 말을 기업 혁신의 금언으로 여기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월(越)나라 명재상 범려(范<8821>)는 성상(聖商)으로 통한다. 후세 상인들에게 처신과 변화, 그리고 상인의 도를 몸으로 보여 주고 있어서다.

그는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도와 숙적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뒤 일등 공신이 됐으나, 곧바로 구천의 곁을 떠나 평생 상인의 길을 걸었다. 재상에서 상인으로의 변신을 마다하지 않은 그의 용기와 혜안은 범인의 범주가 아니라는 게 후세 사람들의 평가다. 상인이 된 그는 천하를 주유하며 쌀이 필요한 곳에선 쌀장수로, 도자기가 필요한 곳에선 도자기 판매상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철저한 시장 파악과 이에 대한 대비로 천만금의 재산을 모았다. 후일 동료 상인들이 장사의 성공 비결을 묻자 땅바닥에 ‘축시승세 득시물태(逐時勝勢 得時勿怠)’라 썼다. 시장의 변화를 쫓아가고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말라는 뜻이다.

거란스의 최고경영자(CEO) 량자오셴(梁昭賢)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소비자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거란스의 이민(利民) 경영관은 범려의 상도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변(變)을 강조하는 중국 기업인들의 정신 뿌리는 이렇게 수천 년의 역사 속으로 뻗어 오면서 지금의 중국 기업인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변화와 창의를 큰 덕목으로 치는 중국의 기업은 경쟁력 차원에서 강할 수밖에 없다.

순더=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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