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펀드 ‘몰빵투자’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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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최근 농산물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원자재 펀드로 돈이 몰리고 있다. 뚜렷한 인기 상품이 없어 고심하던 자산운용회사도 앞다퉈 원자재 펀드를 새로 선보이며 펀드시장에서도 ‘테마’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원자재 펀드라도 투자 대상에 따라 수익률에 큰 차이가 나 투자자의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더욱이 최근 원자재값 폭등은 상당 부분 국제투기자금이 달러 값 하락을 틈타 원자재에 투기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원자재 펀드의 상당수가 상품이 아니라 관련 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데다 원칙적으로 원자재처럼 한 분야에만 투자하는 펀드는 길게 볼 때 부침의 폭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자재 펀드에 돈을 몰아넣기보다는 분산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엇갈린 수익률=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현재 국내 출시된 순자산 10억원 이상의 원자재 펀드는 28개다. 이 가운데 원자재 관련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는 11개이고 나머지는 원자재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 주식이나 해외 펀드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어디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크게 차이가 났다.

파생상품에 투자한 펀드는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하면서 짭짤한 수익률을 올렸다. 예컨대 ‘미래에셋맵스로저스Commodity인덱스파생상품 1ClassB’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8%가 넘었다. 해외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 -14.3%보다 훨씬 좋은 성과다.

반면 원자재를 취급하는 기업 주식에 투자한 펀드는 수익률이 신통치 않았다. 금 관련 회사에 투자한 펀드를 제외하고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대부분 마이너스였다. 펀드평가회사인 제로인 이수진 대리는 “파생상품은 원자재값 급등의 효과가 거의 그대로 반영되지만 주식은 세계 증시 흐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원자재값이 올라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자재 펀드를 고를 때도 투자 대상을 확인해야 하며 주식형이라면 어떤 회사에 투자하는지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몰빵’투자는 피해야=원자재 펀드 쏠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제로인에 따르면 22개 원자재 펀드로만 연초 이후 2200억원이 몰렸다. 특히 주식형보다 수익률이 높은 파생상품형이 인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달 11일 설정한 ‘미래에셋맵스로저스농산물지수종류형파생상품(C-I)’에는 두 달도 안 돼 560억여원의 자금이 몰렸다. A증권사 판매사원은 “원자재 펀드가 뜬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조건 원자재 펀드에 돈을 넣겠다는 고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자재 펀드는 위험도 크다. 특히 최근 국제 유가와 곡물 값의 비정상적인 폭등은 투기 조짐이 짙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당장 원자재값이 폭락하지는 않겠지만 길게 보면 원자재에만 ‘몰빵’ 투자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메리츠증권 박현철 펀드애널리스트는 “곡물지수는 주가지수와 상관관계가 낮아 분산 투자에 적합하다”며 “한 분야에만 투자하는 펀드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20% 미만으로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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