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물원의 봄, 사랑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3일 오전 8시쯤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병원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수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밤새 암컷들끼리 벌인 쟁탈전에서 코요테 한 마리가 크게 다친 것이다. 앞다리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엉덩이에는 이빨 자국이 깊게 나 있었다. 코요테는 마취주사를 맞고 3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이날 다른 우리에서도 싸움에서 패한 늑대 암컷 한 마리가 수술대에 올랐다. 수의사인 어경연 진료팀장은 “코요테와 늑대는 다른 동물과 달리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기 때문에 암컷들 간에 싸움이 잦다”며 “짝짓기가 활발해지는 봄에는 하루에 한두 번씩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과천 서울대공원의 동물들이 짝짓기와 출산의 계절을 맞았다. 동물번식장은 짝짓기와 출산을 유도하느라 공원 내 어느 곳보다 분주하다. 희귀동물인 삵·스라소니·여우 등의 우리 안에는 가림막·동굴을 설치해 ‘은밀한’ 공간을 만들었다. 5일 경칩을 맞은 개구리를 위해서도 산란 장소가 마련됐다.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일반 관람객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큰 뿔이 특징적인 바바리양(솟과의 동물) 우리에서는 수컷 두세 마리가 암컷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서로 뿔을 맞대고 힘을 겨뤘다. ‘큰물새우리’의 새들은 부리로 “깍깍” “다다닥” 소리를 내며 구애를 했다.

봄이 되면서 동물원에선 새 식구의 탄생도 잇따르고 있다. 1일 태어난 에뮤(타조와 비슷한 모습의 동물) 새끼들은 벌써 달리고 싶은 듯 유리 사육장 안 여기저기에 부리를 부딪치며 활발히 움직였다. 임신 중인 하마·흰오릭스·기린은 3월 말부터 출산을 앞두고 있다. 사육사들도 ‘예비 엄마’들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유산 경험이 있는 기린을 위해서는 수시로 바닥의 건초를 점검해 준다. 맹수 사육사들에게는 15세 노처녀 호랑이인 ‘낭림이’가 올봄 짝짓기에 성공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인공포육실에서는 한 살짜리 시베리아 호랑이인 믿음(수컷)·소망(암컷) 남매의 장난이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6월 태어난 남매는 가족과 떨어져 인공포육실에서 겨울을 보냈다. 어느 정도 살집이 잡힌 이들 남매는 이르면 다음달 어미와 다른 형제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쉰일곱 나이로 코끼리로서는 고령에 해당하는 아시아 코끼리 자이언트(수컷)는 겨우내 다리 관절통 때문에 고생을 했다. 코끼리는 수명이 60~70년이다. 자이언트는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마사지를 받고 나서 많이 나았다.

서울대공원 김보숙 동물운영팀장은 “매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맘때에는 동물원의 전 직원이 동물들의 봄맞이 준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