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세계 수준 도약 위해 교수 퇴출은 겪어야 할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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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아픔이지요.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대학이 하나쯤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남표(72·사진) KAIST 총장은 3일 “재임용 심사에서 교수 6명을 탈락시킨 데 대한 아픔은 크지만 그로 인해 앞으로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처음으로 이런 용단을 내렸지만 강단을 떠나게 될 당사자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본지 3월 3일자 1면>

-너무 가혹한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한국 대학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고, 탈락한 교수 입장에서도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총장으로서도 정말 아픔이 크다. 하지만 KAIST와 대학이 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재임 중 성과를 내기 위해 충격 요법을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한국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 뒤를 쫓아가기만 했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때다.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만 의무를 다하지 않은 감이 있다. KAIST 입장에서 보면 존립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KAIST가 나태해 있다면 정부가 예산을 계속 지원하겠는가. 최선을 다해 하루빨리 세계 대학 중 선두로 올라서야 한다.”

-외국 대학들은 이런 일이 흔한가.

“하버드대나 MIT 등 미국 명문 대학에서도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가 많다. 그들 중에는 퇴출된 뒤 더 잘된 경우도 있다. 정신을 바짝 차렸든, 원래 실력이 있었든 간에 다시 일어선 경우들이다. 탈락한 6명의 경우도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얼마든지 더 잘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번 조치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도 있다고 한다.

“평가에는 교수들만 참가하지 않는다. 외부 전문가한테도 평가서를 받기 때문에 그렇게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 이번에 탈락한 교수의 평가는 총장과 인사위원회가 별도로 했다. 양측의 결과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치했다. 재임용을 해야 한다는 한 명은 내가 직접 퇴출자 명단에 넣었다.”

-재임용 심사를 앞으로도 엄격하게 할 생각인가.

“지금보다 더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재임용 심사에서 걸러내지 않으면 교수 사회는 사실상의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로 전부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과학기술을 따라잡을 새 피를 수혈하기 어렵다. KAIST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지 못하는 교수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다. 반면 잘하는 교수에게는 젊었을 때라도 테뉴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통계적으로 나이가 들어도 잘한다.”

-퇴출된 교수들이 집단소송을 낼 가능성은.

“그런 소송도 각오하고 있다. 소송을 하고 안 하고는 본인들에게 달려 있지만 다른 대학이나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서 총장이 직접 다른 대학을 돌며 떠나는 교수들의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들었다.

“당초 20개 대학을 방문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7개 대학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중 6개 대학으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6명이 KAIST에서 퇴출된다고는 하지만 학내에서 상대적으로 연구 실적이 부진한 것뿐이다. 한국 대학 전체로 보면 나쁜 성적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최상위 대학에서 재임용이 안 되면 그 다음 등급의 대학으로 옮겨 가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한국에도 그런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본다.”

-KAIST가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정부에서 지금보다 최소한 연간 200억원은 더 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간섭은 줄여야 한다. 미국에도 잘나가는 주립대학들의 공통점은 주정부에서 예산만 주고 간섭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임용과 테뉴어 심사를 너무 엄격하게 하면 KAIST를 원하는 교수들이 줄어들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유능한 사람은 경쟁을 원한다. 실제 KAIST에 지원하는 우수한 교수가 전보다 늘었다. 그들이 KAIST로 오려는 또 다른 이유는 우수한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뛰어난 학생들이 있어야 연구 성과를 내기도 쉽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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