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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車 진입 막고, 분리대 빨리 텄더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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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휴게소로 가자
5일 오후 고속도로가 마비되자 추위와 허기에 지친 승객들이 음식물을 구하기 위해 중앙분리대를 넘어 휴게소로 향하고 있다.

해가 져도 정체
6일 밤이 새도록 차는 꼼짝하지 않고, 승객들은 연료를 아끼느라 히터도 틀지 못한 채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비상식량 도착
고속도로에서 밤을 꼬박 새운 승객들이 6일 아침 군 장병들이 나눠주는 음식물을 받기 위해 몰렸다.

지난 5, 6일 충청.경북 북부 지방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엄청난 재산 피해가 나고 1만여명의 고속도로 이용자가 24시간 이상 도로 위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채 추위.배고픔과 싸워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폭설로 재산 피해를 보고 고속도로가 불통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도로공사.경찰 등 해당 공무원들이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웠더라면 많은 승객이 장시간 생고생을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의 잘못된 판단, 이에 따른 대응 조치 미숙과 지휘부의 안이한 대처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현장 오판(誤判)이 피해 키워=기상청이 충청남북도 지역에 대설주의보를 내린 것은 5일 오전 4시. 오전 3시 현재 지역에 따라 0~8㎝의 눈이 내렸으며 이날 밤까지 총 예상 적설량은 5~15㎝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전날 밤 수도권 일대가 기습 폭설로 홍역을 치렀던 점을 모르지 않았을 고속도로 관리 담당자들은 당연히 비상근무에 들어가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고속도로 마비 조짐은 또 있었다. 이날 오전 7시 남이분기점 부근에서 차량이 언덕길에서 미끄러져 뒤엉키면서 정체가 가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량 진입을 막고 제설작업에 나서야 할 도로공사와 경찰의 판단은 안이했다. 도로공사 측은 "5일 오전 11시 옥산~남이분기점의 정체 구간이 13㎞여서 주말 평균(20~30km)에 비해 결코 정체가 심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폐쇄회로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을 보면서 폭설이 내린 도로 형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로공사가 경찰과 협의해 고속도로를 차단한다고 발표한 것은 5일 오후 2시. 이미 시간당 10㎝의 눈이 내려 사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황이었다. 고속도로 진입 통제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도로공사 직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운전자가 고속도로로 진입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통제했더라면 상당 부분 체증을 줄일 수 있었다.

차량이 뒤엉킨 지점의 현장 조치도 미흡했다. 사고 등으로 고속도로의 한쪽 방향 차량이 완전히 막힌 상황이라면 차량이 뜸한 반대편 차선을 틔워 되돌려 보내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이날 오후 4시쯤에야 중앙분리대 9곳을 열었다.

"공사에 필요한 중장비와 인력을 현장에 접근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게 도로공사 측의 설명이지만 이 모든 것이 초기 대응이 잘못된 결과였다. 도로공사 측이 조치를 게을리하는 동안 운전자들은 음식이나 휘발유를 구하기 위해 차를 두고 떠난 경우가 많아 혼란이 가중됐다.

도로공사 측은 또 교통 통제 해제 시간을 이날 오후 7시로 처음 발표했다가 네차례나 연기하는 등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지둥댔다. 이 때문에 중앙재해대책본부장인 허성관(許成寬)행정자치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결과적으로 허위보고를 했다.

◇지휘부도 우왕좌왕=중앙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7일 "고속도로 소통.제설 작업은 도로공사와 건설교통부 소관 사항"이라며 "대책본부는 상황을 종합할 뿐"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대전.충남.충북소방본부가 5일 오전부터 자체적으로 비상경계 근무에 들어가 모든 공무원이 퇴근을 미루고 비번인 직원들도 사무실에 나와 대기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재해대책본부는 5일 오후 9시에야 9개 기관 관계자 10명을 소집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호우경보나 태풍주의보가 내려질 경우 15개 기관 34명이 합동 근무에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사안의 중대성을 간과한 것이다.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풍수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한 근무지침은 있으나 눈 피해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김상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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