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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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자에게서 여자란 어떤 존재일까.남자에게서 여자란 바로 생명이나 산과 다름없는 존재다.여자는 남자가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감각도,쾌락도,행복도,만족도,꿈도,이상도,현실도….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히틀러가 에바 브라 운에게,항우가 우미인에게 받았던 것같이 천하를 호령하는 이상의 행복을 여자는 남자에게 줄 수 있다.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순간에는 초월기능이 발동한다.그 만남으로 인해 남자의 정신은 풍요로워지고새로운 힘을 얻으며 창조적으로 발전한 다.주미리가 죽은 후 민우에게 남겨진 것은 처참한 절망과 허무 뿐이었다.아내와 자식이죽고서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주미리 뿐이었는데그녀마저 훌쩍 떠나버리고 만 것이었다.민우는 더이상 자기에게 행복은 가능하지 않으리 라 생각했다.그러나 우연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그를 찾아온 여러 여자들은 민우의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삶을 풍족하게 해주었던 것이다.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눈요기를 하고,화사한 웃음 속에 기쁨을 느끼며,섹스를 하면서 육체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민우의 불행은 곧 잊혀졌다.그러나 그러한 여성성(feminity)의 충족은 오래 가지 않았다.만남이 길어지면 여자들은 공식처럼 민우에게 집착과 욕심을 보였고 그때부터 그녀들 의 여성성은 사라지기 시작했다.겉은 여전히 여자차림이었지만 속은 성가시게 흥정하는 남자장사꾼 같이 되어 민우를 자기 뜻대로조종하고 설득하며 다짐과 확인을 받으려 했다.그때가 되면 민우는 그녀들을 멀리했다.호모가 아닌 이상 남자로 변한 여자들을 구태여 자주 만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채영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그녀는 민우가 원하는 것만을 충족시켜 줄 뿐 그 이상의 집착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민우가 필요로 할 때는항상 곁에 있었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민우를 내버려 두며 최대한 존중해 주었다.그런 그녀에게서는 민우는 조금도 남성성(masculinity)을 느낄 수 없었다.저렇게 여자같은 여자가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헤르마프로디티즘(hermaphroditysm)의 연기를 해낼 수 있었을까.불가사의였다.민우가 자기만의공간에 있을 때는 채영 또한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갔다.채영의공간은 그야말로 공상으로 꽉 찬 공간이었다.그녀가 공상하다가 컴퓨터를 두드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정신분열증 환자 같았다.그녀는 정신이 나간 채로 앉거나 서거나 드러눕다가 불현듯 일어나 컴퓨터를 두들기곤 했다.그 모습은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가 환청을 그대로 받아적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 자기만의 공간에서 나오면 채영은 항상 민우를 배려하고 신경쓰며 존중해 주 었다.그래서 민우는 이제 더이상 불행을 느낄 여가가 없었다.과거는 이미 흘러간 것!민수 형의 물 이론대로 흘러가버린 물살에 집착할것이 아니라 지금 흐르고 있는 내 물살에 충실하는 것이다.채영의 살인 사냥은 민우에게 행복이라는 사냥 감을 잡아다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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