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사랑과 자비는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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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강남교당「교화의 방」으로 들어가는 복도 한편에는 예쁜 계란바구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베타니아집과 성라자로마을,그리고 다른 수도원에서 부활절 선물로 보내온 것들이다.
가지각색으로 물들여진 계란과 공예품처럼 보이는 계란이 가득 담긴 부활절 계란바구니 선물은 신앙을 달리한 사람에게도 기쁨을준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리는 믿음깊은 신앙인의 큰 정성이 작은 계란에 어리어 있는 그 귀한 선물을 함부로 할 수 없어 한곳에 모아놓고 1년 내내 두고 본다.부활절 계란바구니들은 이제우리 교당에서 사랑받는 실내장식물이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수없이 눈길이 머무르는 부활절계란바구니에서 나는 때로 천주교와 원불교가 서로 통할 수 있는「보이지 않는 길」이 있음을 본다.
명동 바오로수도원의 더 깊은 곳에는 베타니아집이 있다.값진 헌신의 삶터에서 그 소임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노수녀님들이 수도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집이다.
베타니아집을 찾아다닌지도 올해로 10년째가 된다.갈 때마다 온 마음으로 반기시는 수녀님들,수도의 세월만큼이나 온화하고 투명한 눈빛을 간직한 노수녀님들과 함께 있노라면 서로 다른 종교의 거리와 벽은 사라지고 한 가족이 된다.
그 단란한 분위기에 젖어있다 보면 사바세계 바깥세상과는 천리만리 동떨어져 있는 청정함을 느낀다.도심 속의 명동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고요함,그리고 노수녀님들의 걸음걸이처럼이나 한가로움이 흐르는 수도원.『박교무님, 우리 수도원으로 와요』하며 따뜻한 정을 주시는 수녀님.『그런 말씀은 마세요.실례죠…』하고 만류하시는 수녀님들 속에 있다 보면 맑은 기쁨이 샘솟는다.
베타니아집 노수녀님들께서는 4월하순에 방문해도,5월 초순에 찾아 뵈어도 한결같은 첫 인사는『부활축일 잘 지내셨죠』하며 몫지워 간수해두었던 부활절 계란바구니를 건네 주시곤 한다.
지난 부활절에 노수녀님들에게 기쁨을 드리기 위해 호접란 한 분을 들고 베타니아집을 찾았다.수녀님들은 부활축일때 왔다며 여느 때보다 더 반기셨다.「축 부활절」이란 리본이 달린 난꽃 앞에서『이 난은 참 아름답다.너무 예쁘죠』하며 호기 심 많은 소녀들처럼 좋아하는 그 분들 모습은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하늘에서 가까운 동네 인도의 히말라야 설산 라닥 사람들에게 우리의 겨울옷을 보내는 일을 원불교가 주관해 했을 때도 대치성당이 중심이 되어 천주교의 많은 분들이 합력했었다.이제는 오랜내전(內戰)에 시달리며 모든 물자가 귀해 헐벗고 사는 열대의 나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남는 옷을 보내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도 대치성당에서는 부활절 축일부터 캄보디아에 보낼 옷을모으기 시작,온정의 옷이 쌓이고 천주교신자 여러분들은 그 옷들을 자신의 친지에게 보내기라도 하듯 정결한 것들만 골라 상자에담아 포장하고 있다.
역사가 짧고 교세가 더 약한 원불교가 앞장서서 세계의 불우한사람들을 위해 일할 때마다 마치 한 집안일처럼 손을 맞잡는 천주교에서「참사랑과 너그러움」을 배운다.유엔은 올해를「세계 관용의 해」로 정했다.국제사회에서 냉전체제가 사라진 이후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또다른 위기는 종교간,종족간 갈등과 대립으로 지구촌 곳곳에서는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우리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울 수 있다면 지구촌에는 진정한 평화가 깃들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원불교 강남교당 교무〉 ◇약력▲58세▲원광대 원불교학과 졸▲동국대 대학원 불교학 석사▲원불교 首位團員▲저서 『기다렸던 사람들』『마음으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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