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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문화재지킴이 이은정양 “매주 물기 닦아내고 쓸고 탑비 3년 돌보며 정 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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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은정양이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를 찾아 자신이 맡은 지광국사현묘탑비와 석물을 살펴보고 청소하는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선조의 예지와 숨결이 깃든 숭례문이 하룻밤 사이 사라진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1일 자신이 맡아 돌보고 있는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 를 찾은 문화재지킴이 이은정(16·원주 치악고 2년)양. 이 양은 “온갖 수난과 시련에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숭례문이 소실된 것은 문화유산의 중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관리의 허술함과 국민이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가꾸고 지키는 풍토를 만들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민이 참여와 나눔으로 문화재를 가꾸고 지켜야 숭례문 같은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양은 2시간 동안 비문과 안내판을 닦고, 건물터·배수로를 깨끗이 청소했다.

이양이 지광국사현묘탑비의 문화재지킴이가 된 것은 2005년 4월. 이전부터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문화재 봉사활동을 했지만 이 제도가 생기면서 바로 문화재지킴이로 위촉됐다. 이때부터 매주 한 두 번씩 법천사지를 찾아 탑비는 물론 절터에 흩어진 석물과 기왓장 하나라도 정성껏 돌보고, 주변도 말끔히 청소하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탑비의 균열된 곳을 세밀하게 살펴 수분을 닦아낸다. 물기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틈이 더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양은 어린 시절 환경부장관상을 받을 만큼 환경에 관심을 갖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다 문화재에 눈을 돌린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섬강의 숨결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유적지를 조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관리가 소홀하거나 훼손돼가는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본격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매주 주말과 방학 때는 어김없이 손길이 닿지 않는 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주지역뿐 아니라 평창 양양 등 강원도 전역은 물론 ‘전국문화유적지도’를 만들 만큼 전국의 문화재에 관심을 쏟았다. 먼 거리는 함께 다니는 등 부모님도 이양의 문화재 답사를 적극 지원했다.

문화재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양은 학원과 지역단체에서 실시하는 한문 교육을 받았다. 생활 한문으로는 부족하자 문화재 한자교실, 금석문자료 등도 공부했다. 또 문화재 공부를 위해 문화재강좌와 학술대회를 찾아 다녔고, 문화재청의 ‘문화재 정보센터’도 적극 활용했다.

이양은 문화재 답사 후 일기형식으로 문화재답사기를 썼다. 그러다가 2006년 6월 조인스에 블러그 ‘이은정의 문화재 사랑(http://blog.joins.com/dangye)’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15만여 건이 접속했다. 블러그에는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지광국사현묘탑비를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답사 기행 ^문화재 알차게 가꾸기 ^문화재 바로 알기 ^문화재 함께 공부해요 ^문화재와 과학 ^문화재 다 함께 즐기기 등 다양하게 폴더를 구성했다. 이 블러그로 이양은 2006년 말 으뜸문화재지킴이 대축제 블러그 경진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받았다. 2005년 12월 문화재지킴이 표창을 받은 그는 2007년 말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에서 ‘반곡역사 답사기’로 입선했다.

강원대 과학영재교육원을 다녔고, 카이스트에서 물리분야 공부를 해 한국물리학회 물리홍보대사에 선발되기도 했던 이양의 장래 희망은 과학도. 특히 우주와 천체분야에 관심이 많단다. 그럼에도 그는 “문화재도 보존과 복원 등 과학적 방법과 기술이 필요하다”며 “물려받은 문화재를 미래 세대에 전해줘야 할 의무가 있어 지속적으로 문화재를 찾아 가꾸고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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