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진눈개비(?) 내리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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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듯싶더니 얼마 전 겨울이 가는 걸 아쉬워하는 눈이 내렸다.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내려 제법 소복이 쌓이기도 했다. 하지만 눈이 습기를 가득 머금은 채 바람에 흩날리고 있어 ‘꼭 진눈개비 같아’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추적추적 비에 섞여 내리는 눈을 가리켜 ‘진눈개비’라고 쓰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러나 이는 ‘진눈깨비’를 잘못 표기한 것이다. 바닥에 닿으면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것처럼 질퍽거리는 진눈깨비는 보송보송 내려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마른눈과는 다르게 들뜬 기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눈은 ‘진눈깨비’ ‘함박눈’이란 표현 외에도 상태와 종류에 따라 다양한 우리말 이름이 존재한다. ‘도둑눈’은 밤사이에 사람들이 모르게 내린 눈을 의미하고, ‘자국눈’은 겨우 발자국이 날 만큼 적게 내린 눈을 뜻한다. 조금씩 잘게 내리는 ‘가랑눈’, 가늘고 성기게 내리는 ‘포슬눈’, 빗방울이 갑자기 찬 바람을 만나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싸라기눈’ 등…. 이처럼 눈을 이르는 우리말 표현은 다양하고도 정답다.

가는 계절은 오는 계절을 막을 수 없는 게 세상의 순리인지 하루 종일 눈이 펑펑 내렸지만 겨울 눈처럼 정답지 않고 허전하다. 바람의 끝 또한 칼날이 한껏 무뎌져 있다. 눈이 오는데도 어린아이처럼 기쁘지 않고 슬퍼지는 건 계절을 떠나보내는 아쉬움 때문일까.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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