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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나면 반짝 관심 갖다 금세 옛날로 돌아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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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18면

숭례문 화재 이틀 뒤인 지난달 12일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장.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서 ‘숭례문 화재상황 및 후속조치’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보고를 마친 유 청장에게 “낙산사 화재 이후 수립한 목조 문화재 관련 대책을 가져와 보라”고 지시했다. 유 청장이 내놓은 보고서는 A4 용지 3쪽 분량의 문화재 화재 시 매뉴얼이 전부였다. 노 대통령이 좀 더 세부적인 매뉴얼이 없느냐고 묻자 유 청장은 “추후에 다시 보고하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모든 관련 매뉴얼을 다시 검토하라며 질책성 지시를 내렸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대형 사고가 꼬리를 물고 거듭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는 있는 것일까. 대형 참사와 관련된 4명과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그 의문을 풀어봤다.

대형 참사 관련된 4명이 본 ‘人災 공화국’

“문화재 특성 따른 대응 매뉴얼 갖춰야”
-법인 스님 낙산사 총무

“낙산사 화재가 불과 2년 전 일인데…. 너무 안타까워 숭례문 사십구재를 낙산사에서 치르려고 합니다.”2005년 4월 천년 고찰 낙산사가 새까맣게 타 폐허로 변해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법인 총무스님. 스님에게 이번 숭례문 화재 사건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스님은 “국보 1호가 도심 한가운데서 불타 무너지는 처참한 모습을 TV로 보면서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낙산사는 부활의 날갯짓이 한창이다. 중심 법당인 원통보전과 종각이 새로 지어졌다. 불타 버린 동종과 전각 9채도 복원됐다. 하지만 그 역사까지 고스란히 되살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스님도 잘 알고 있다.

“화재 후 당국과 국민의 큰 관심으로 현재는 방재 시설을 잘 갖추었습니다. 우리 절 자체로 비상 매뉴얼도 마련해 소방당국과 비상 훈련을 1년에 두 차례씩 하고 있고요. 낙산사는 앞으로 문제가 없겠지만 다른 사찰은 방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스님은 화재 시 대응 매뉴얼을 좀 더 치밀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재마다 특성이 다 다릅니다. 그런 특성에 따른 개별 진단과 대책이 필요해요. 사고가 터지면 그때만 반짝 관심을 갖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버리는 분위기가 아쉬울 뿐이죠.”

“사후관리 시스템 없이는 성수대교 붕괴 재연될 것”
-문명훈 사무처장 건설교통시민연대

“성수대교 사고 후 책임감리제,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 등이 도입됐지만 현실에서는 유명무실합니다.” 건설교통시민연대의 문명훈 사무처장은 “성수대교 사고가 일어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건설업계의 잘못된 관행과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당국의 안이한 자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연대는 우리나라의 건설교통 문화를 바로잡자는 취지로 뜻있는 건설업계 종사자와 학계·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2001년 10월 21일 만든 시민단체다. 10월 21일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이다.

문 처장은 “당시 15년 된 성수대교가 무너진 데는 시공상 문제도 있었겠지만 사후 관리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량이 견딜 수 있는 적정하중을 넘어서면 다리가 몇 배나 빨리 노화되는데, 성수대교가 그런 경우였다”는 얘기다. 미국·독일과 같은 선진국은 화물을 적재하는 단계는 물론 고속도로와 국도 등 주요 길목마다 철저하게 과적 방지 시스템이 작동한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빼고는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주요 공단마다 길목에 과적 방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후 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내에 제2의 성수대교 사고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불 난 대구 중앙로역에만 수막시설 설치는 전시행정”
-황순오 대구지하철 화재 희생자 가족

“최근 들어서도 대구지하철 2호선에 두 차례나 정전 사고가 났습니다. 이러다가 또 다른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대구지하철 희생자대책위원회 황순오(41) 사무국장은 2003년 참사 때 어머니(당시 57세)를 잃었다.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대책위 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무국에서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 국장은 “추모사업과 재단 설립 등 남은 과제를 해결할 때까지 사무국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결혼해 아이 2명을 두고 있지만 생계는 백화점 판매원인 아내의 수입으로 꾸려가고 있다.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하철 화재 이후 적지 않은 부분이 개선되기는 했다. 우선 전동차 내장재가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로 교체됐다. 화재가 난 1호선 중앙로역에는 세계 최초로 ‘수막 차단벽’이 설치됐다. 불이 나면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유독가스가 퍼지는 것을 차단해 준다. 그러나 황 국장은 대구 지하철의 안전성을 여전히 믿을 수 없다.

그는 “수막 차단벽이야 말로 대구시의 대표적 전시행정”이라며 “불이 나지 않은 다른 역사에도 수막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유족회가 백서 제작 추진 관련 기관 자료 안보내줘”
-이재원 인천호프집 화재 희생자 가족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이재원(57)씨는 요즘 우울증이 심해졌다. 신문과 방송에서 연이어 쏟아지고 있는 화재 소식 때문이다. 10년 전 숨진 외아들 생각이 떠오르는 데다 그때 이후로 별로 변하지 않은 현실이 참담하게 느껴진다. 이씨의 아내는 화재뉴스가 나오면 자리를 피한다. 이씨는 1999년 10월 30일 56명이 목숨을 잃은 ‘인천호프집 화재’ 사건 유족 모임인 ‘인천화재 학생참사 유족회’ 회장이다.

지난 1월 초 유독가스로 40명이 숨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저거 생존자 한 명도 없겠다’였다. 그의 아들도 유독가스로 숨졌다. 우레탄폼 장식이 가득한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면서 뿜어져 나온 유독가스가 계단을 타고 2층 호프집으로 몰려들었고 호프집은 독가스실이 됐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레탄 유독가스로 숨지는 사고를 경험하고서도 또다시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탄식했다. 사고 직후 인천시에서 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백서(白書)’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흐지부지됐다. 유족회 차원에서 백서 제작에 나섰지만 결국 포기해야 했다. 이씨는 “소방서와 경찰 등 관련 기관이 조사자료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며 “백서가 나오면 또 누군가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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