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강산 '獨創'회 뮤지컬로 꾸몄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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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문세(45)씨가 1년간 진행한 전국 투어 콘서트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오는 11~14일 열리는 서울 공연이 피날레다. 지난해 3월 22일 서울 한전 아츠풀센터에서 닻을 올렸다가 1년간의 항해 끝에 같은 장소에서 정박하게 됐다.

그동안 찾은 도시는 수원.인천.전주.창원.부산 등 19곳.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찾은 도시까지 합치면 모두 30군데다. 지난달 27.28일 이틀간 일본 도쿄에서도 공연했다. 14일 공연을 포함해 총 공연 횟수는 정확히 97회. 나흘에 한번꼴이다. 매회 거의 매진을 기록해 유료 관객수만도 18만명. 공연 횟수나 청중 수에서 단일 투어로선 최다 규모다.

지난 5일 일본 공연을 마치고 막 귀국한 그를 만났다. 마흔을 훌쩍 넘긴 이사람, 늦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신이 나있다. 검은색 선글라스 뒤로 보이는 눈에 노곤함이 얼핏 보이지만 공연 얘기가 나오자 거침이 없다.

"지역마다 관객 반응도 가지가지죠. 경상도는 한마디로 '앗싸리'해요. 공연 첫 부분이 마음에 안 들면 끝까지 차갑지만, 한번 분위기 살면 최고죠. 전라도분들은 흥이 넘쳐나요. 내가 잘하든 못하든 관계없이 무조건 즐기시죠."

그의 공연 타이틀은 '이문세 독창회(獨創會)'다. 혼자 부른다는 뜻의 '獨唱'이 아니라 새롭고 독특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번 투어 공연은 '붉은 노을''사랑이 지나가면''솔로 예찬' 등 그의 히트곡이 당연히 포함되지만 여기에 다채로운 공연을 곁들였다.

제1부는 한 편의 뮤지컬이다. 막이 오르면 뱃머리 앞부분에 이씨가 가면을 쓰고 나타나 '오페라의 유령'의 한 부분을 부르곤 곧바로 자신의 히트곡을 스토리를 따라 열창한다. 출연진은 까까머리 고교생과 단발머리 여고생 등으로 분장하기도 한다. 2부는 관객과 함께하는 한바탕 잔치다. 청중을 기악반.미술반.연극반으로 나눈 뒤 자연스레 무대로 올려 댄스 경연 등 장기 자랑을 펼치도록 한다.

이 공연의 기획사인 '좋은 콘서트'가 문화상품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말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는 '고객만족경영대상'을 받은 것도 청중과 함께 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거제도 공연 갔을 때였죠.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더라고요. 언제 박수를 쳐야하는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제가 '재미 없어도 환불해 주지 않습니다. 5만원 넘는 돈이 아깝지 않으려면 내키는 데로 마음껏 노세요' 라며 흥을 돋웠죠. 막판에 가자 섬이 떠나갈 듯 열광적이었습니다. 어느 분이 '외지에 사는 터라 35년 만에 처음 공연을 봤다. 정말 신기하고,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었다'고 사연을 남기셨어요."

문화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 문화의 변두리로 밀려났던 연령대에 호응을 받은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다는 말이다. 이씨가 자기 이름을 딴 공연을 시작한 것은 1998년이었다. 이 때만해도 그는 가수로서보다는 구수한 입담을 내세운 유능한 진행자(MC)나 DJ로 더 인기가 높았다.

"노래에 대한 열정은 늘 간절했죠. 하지만 TV에 나와 앵무새처럼 부르고 싶진 않았어요. 10대를 겨냥한 댄스 가수만 넘쳐나는 판에서 아옹다옹 어울리는 것도 마땅치 않았고요. 그러다 더 이상 현실에 연연하지 말고 직접 팬을 찾아가자고 마음먹었죠."

이렇게 시작한 '이문세 독창회'는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이 되기 시작했고, 2001년의 두번째 '독창회'도 대성공을 거두면서 최고의 공연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이씨의 전국 투어는 이제껏 라이브 무대보다 TV를 중시했던 한국 가요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제가 됐다.신승훈.김건모.윤도현 등 후배 가수들이 TV보다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게 된 데는 '이문세 독창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출연진과 연주자들,그리고 스태프를 합쳐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아요. 단지 노래에만 매달릴 수 없고 맏형처럼 음향.무대준비.의상 등 전부분에 신경을 써야 해요. 한번은 공연 시작전에 출연진을 불러 세워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자'고 잔뜩 군기를 잡았죠. 그런데 막상 공연에 들어가자 소품 등에 신경을 빼앗긴 나머지 그만 박자를 놓치고 만 거예요. 끝나고 출연진한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던지…." 그는 MT도 가고, 술자리도 자주 가지면서 지난 1년간 후배들을 다독여왔다.

최근 '7080 세대'가 문화 향수층의 주력부대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도 그의 공연과 무관하지 않다. 공연을 찾는 팬들 중에는 20대 여성도 있지만 상당수는 30,40대 아저씨,아줌마들이다. "강원도 원주에 갔을 때 한 아주머니가 제 손을 꼭 붙잡고 '20대 처녀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힘이 닿는 한 머리가 희끗희끗해져도 계속 돌아다닐 겁니다." 공연문의 1544-0737.

글=최민우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숫자로 본 이문세 공연>

■ 공연횟수 97회
■ 공연도시 19개 (앙코르 포함하면 30개)
■ 유료관객 18만명
■ 공연시간(리허설 포함) 550시간
■ 출연진.스태프 121명
■ 출연진.스태프 총 식사비 1억3000만원
■ 관객 평균 연령 30.5세
■ 조달한 생수 개수 500㎖짜리 2만20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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