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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로맨틱 코미디 '…홍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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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로맨틱 코미디의 스포트라이트는 여배우에게 주로 쏠렸다. 김정은.김선아에게 '코미디 퀸'이라는 왕관이 씌워졌던 것이 그런 예다.

그런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이라는 26글자의 긴 제목을 가진 영화에서 빛을 발한 김주혁(31)에게도 왕관 하나는 쥐여주어야 할 것 같다. '코미디 킹'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코미디 루키(신인)'라고 부르기에는 유감이 없다.

관록있는 노력형 여배우 엄정화가 받쳐주었지만 이 영화는 전적으로 김주혁, 아니 홍반장에게 기대고 있다. 드라마 '카이스트'의 모범 대학원생 얼굴을 하고서 천연덕스러운 대사를 날리는 그가 웃기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자존심 때문에 '쇼'로 사표를 냈다가 덜컥 수리되는 바람에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개업하게 된 치과의사 혜진(엄정화)과 복덕방.편의점.택배.정육점.인테리어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섭렵하고 온 동네 일을 간섭하고 돌아다니는 홍두식(김주혁). 영화는 이 둘 사이의 밀고 당김으로 이어간다.

혜진이 병원 자리를 구하면 홍반장이 나타나 다리를 놔주고, 자장면을 시키면 씩씩거리며 배달 오고, 편의점에 가면 계산대에 서 있다. 그뿐인가. 친구와 놀러간 카페에서는 가수가 감기에 걸렸다며 홍반장이 대타로 나오고, 택배로 포도주를 배달시키면 노란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오는 식이다. 설정이 이러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가 모든 웃음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할 수밖에.

▶통기타 가수, 페인트공, 공익근무요원의 대타(위로부터) 등 수십가지 직업을 섭렵하는 홍반장(김주혁).

홍반장은 건달이 돼 거들먹거리는 친구에게 "어디다 내놔도 부끄럽~게 촌스러운 건 여전하군"이라 핀잔을 주고, 어릴 적 자기는 별나라 공주인 줄 알았다며 알딸딸한 술기운을 빌려 부끄럽게 고백하는 혜진을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니네 별로 돌아가"라며 뒤통수를 친다.

그런데 영화는 비록 와이어 액션이지만 매트릭스 같은 묘기를 선보이며 건달들을 때려눕히고, 기타를 치며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를 실제로 열창하는 김주혁의 개인기에만 너무 의존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상황도 러닝 타임이 반쯤 지나면, "뭐 어디선가 또 나오겠지"라며 별 기대도 갖지 않게 만든다.

'홍반장'은 상황보다는 대사로 치고 나가는 요즘 코미디의 유행을 따르고 있다. 길디긴 제목부터 '대사빨'로 확실히 웃겨 주겠다는 선언처럼 보이지 않는가.

비록 재치 만발한 대사들이 많지만 짤막짤막한 장면으로 끊어지는 바람에 웃음이 힘을 받아 절정으로 치닫지 못하고 도중에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는 꼴이다.

촌철살인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주고받는 스크루볼 코미디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주연들의 대사가 서로 한두번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정도로만 끝나서야 어디 코미디의 참맛에 다가갈 수 있겠는가. 12세이상 관람가. 12일 개봉.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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