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나선형 실내.
에이다 루이즈 헉스터블 지음,
이종인 옮김, 을유문화사, 304쪽,
2만원
“그의 삶은 거짓과 함께 시작됐다. ”
르 코르뷔지에·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드의 전기(傳記)인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위대한 건축가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책을 펼친 독자를 민망스럽게 만드는 대목이다. 동시에 읽는 이의 호기심을 바짝 자극하기에 충분한 머릿말이기도 하다.
시작 대목 뿐만 아니다. 저자는 줄곧 라이트 스스로 재구성한 삶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두 가지의 ‘다른 버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출생 연도부터가 그렇다. 라이트는 자신이 태어난 해를 1867년에서 1869년으로 바꾸었다. 묘비명에도 ‘1869-1959’라고 새겨져 있다. 덕분에 그의 여동생 제인은 자신의 출생 연도를 오빠에게 빼앗긴 채 평생을 불편하게 살아야 했다. 나이를 2년 줄인 덕택에 그는 “90년대 시카고에서 매우 젊은 나이에 일찍 성공을 거둔 유명한 건축가”가 됐다. 그는 학력 부풀리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가 쓴 자서전은 학자들로부터 “도전적이고 통찰력 있지만 사실 왜곡이 많은 기록”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낙수장’(사진·上) 구겐하임 미술관
저자가 라이트의 업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진부하지만 당혹스럽지 않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라이트의 창조 범위를 더 넓게 보았다. 그가 건축물뿐 아니라 삶까지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1932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라이트는 자신을 비주류를 택한 천재 건축가, 운명의 혹독한 시련을 자초한 외톨이, 이상적인 개혁가로 그렸다.
거짓도, 스캔들도 ‘아웃사이더’의 울타리 안에서는 자연스러웠다. 그는 대학을 4학년까지 다녔다고 했으나 실제 재학기간은 2년 반이 전부였다. 자신이 천재임을 과시하듯 다른 건축으로부터 영향 받은 적 없다고 주장했다. 빚을 얻어 사치생활을 하면서도 돈은 제대로 갚지 않았다. “눈과 기분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금전적 성실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라이트를 라이트답게 만든 것은 허영심과 오만이었다. 자신이 특별한 지혜와 비전의 소유자라는 확신이 그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건축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전통이 자신의 창조성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사랑의 도피행각도 “나는 정직했다”며 맞섰다. “아빠”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고 고백하면서 “일이 자신의 삶이고 빌딩이 자신의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197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건축비평가인 저자는 라이드의 건축과 삶, 양면을 균형 있게 기술했다. 팽팽한 균형감은 서술 방식에서도 빛난다. 재치를 곁들인 글 솜씨로 라이트의 삶을 낱낱이 해부하지만 그를 쉽게 재단하지 않았다.
역사가들로부터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 ‘서정시풍의 비전을 가진 혁신가’로 불린 라이트. 그러나 그가 지은 건물은 그의 삶만큼이나 불완전했다. 라이트의 빌딩에 비가 샌다는 얘기는 무수히 많았다. 양동이 하나인 집, 둘인 집, 셋인 집…. 물이 책상 위로 샌다는 불평을 하는 고객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상을 옮기시오”.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완벽함에 대한 관념까지 비웃어버린 뻔뻔함, 그 자유로움의 경지라니!
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