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러시아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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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마전 모스크바주재 재무관이 한.러경제협력차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러시아대표단과 함께 오면서 인형속에 인형이 든 러시아민속인형을 하나 주었다.
지난 91년4월 당시 소련에 제공하기로 한 30억달러 경협차관 관계로 모스크바에 출장간 일이 있었다.그때 우리는 영빈관에머물면서 리무진을 타고,크렘린 국빈식당에서 식사하고,끝없는 자작나무숲을 지나 러시아의 최고 문화유산인 「자골 스크사원」을 돌아보는 등 글자그대로 칙사대접을 받았다.
6.25동란으로 원수가 되었던 소련의 심장부인 「붉은 광장」을 거닐면서 당시로서는 음산한 두려움과 함께 수수께끼같은 혼란을 느꼈다.
몇달후 하루아침에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면서 15억달러까지 집행되던 경협차관이 공중에 뜨고 말았다.그 후 원리금 상환과 차관 재개를 위해 여러차례 협의도 하고 합의도 하였으나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한.러경협차관은 여러개의 인형 을 열어보아야 마지막 조그마한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민속인형같다고나 할까. 지난주 어느날 제정러시아 외교문서보관소에서 구한말(舊韓末)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을 때 고종황제가 러시아황제 니콜라이2세에게 보낸 절박한 사연의 외교친서 3통이 발견됐다고 보도되었다. 일본과 전쟁이 일어나면 러시아편에 서겠다는 것,한성에 있는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러시아군을 보내 달라는 것,그리고이상설(李相卨)등 3인의 밀사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불법침략을 호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등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서구세력을 업고 러.일전쟁에서 이기고 우리나라도 강점했다.이에 대항해 싸우던 우리 독립군(비록 공산계열이었지만)에게 자금을 지원한 나라가 소련이었고 지금 그들이 러시아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와 있다.
「우리에게 어제의 러시아는 누구였고 오늘의 러시아는 누구며 내일의 러시아는 누구일까.」현명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풀어야 할 무거운 화두다.
〈재경원 세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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