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재> 길 떠나는 책 ⑤ - <고종석의 유럽통신>, <뉴욕 이야기 - 고담핸드북>

중앙일보

입력

‘생각의 보폭’으로 걷기를 권한다

고종석 유럽통신

“나는 한 주일의 시작을 으레 그렇게 하듯, 페르-라셰즈 묘지로 향했어.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위로받기 위해서. 그리고 11구역의 프레데릭 쇼팽과 89구역의 오스카 와일드에게 잠깐의 위로를 받은 뒤, 이 묘지 순례의 마무리를 으레 그렇게 하듯, 97구역 앞의 ‘코뮌 전사들의 벽’ 앞에 이르렀지. 거기서 산화한 영혼들의 진짜 불행으로, 내 얄팍한 불행의식을 세척하기 위해서. 평소엔 한두 송이의 시든 장미가 놓여 있을 뿐이던 벽 앞에 스무 송이 가까운 싱싱한 장미가 놓여 있는 걸 보고는, 아, 5월 21일이, 그러니까, 5월 28일이, 꽤 가까워졌구나, 이젠 정말 5월이구나, 하고 생각했지.”

<고종석의 유럽통신>(문학동네)에 실린, 한때 기자였고, 지금은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고종석의 글이다. 파리를 ‘정신의 거처’로 삼았던 시절의 그의 일상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주는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첫 구절이었다. ‘나는 한 주일의 시작을 으레 그렇게 하듯’. 페르-라셰즈 묘지의 11구역과 89구역을 지나 97구역 앞에서 끝나는 묘지 순례를 한결같은 주간 단위의 이벤트로 삼고 있다는 고백체의 진술이 무척 신선했다. 물론 일상적인 이벤트라는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묘지에서 그가 보여준 감정의 퍼포먼스는 다분히 묵직하고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전통적 의미의 혁명이 불가능해져버린 시대에, 더구나 7,80년대 남한의 파쇼체제하에서조차 단 한번도 혁명을 꿈꾸어보지 않은 자가, 1백23년 전 그 혁명의 시기의 혁명의 도시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주제넘고 부질없는 짓인지는 잘 알아. 그렇지만 나는 오늘, 평소처럼, 그 주제넘음과 부질없음을 무릅쓰고 ‘코뮌 전사들의 벽’ 앞에서 시간반을 보냈어. 그 시간반 동안 나는 다시 한 번 주제넘음과 부질없음을 무릅쓰고 혁명의 시기에 대해, 혁명의 도시에 대해, 그리고 장미꽃 스무 송이만큼은 분명히 남아 있는 혁명의 염원에 대해 하잘 것 없는 생각들을 떠올렸지. 한 주일의 시작을 으레 그렇게 하듯.”

김수영

당대의 칼럼니스트 중 첫 손 꼽힐 만한 미문의 소유자답게 진정성이 묻어나는 고백 앞에서 난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일상적 이벤트 앞에서 이런 수준의 감정적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게, 요즘은 아예 불가능해져버린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에 빗대 말하면, 요즘은 ‘전통적 의미의 모든 것이 불가능해져버린 시대’ 아닌가.
내게도 희미한 기억 속에 자리한 한 개의 장면이 있다. 우이동에 몸을 부리고 살던 시절, 고종석의 표현 하나를 훔쳐 쓰자면, ‘한 달의 시작을 으레 그렇게 하듯’ 시인 김수영의 시비를 찾았다. 도봉산 등반길에 접어들어 숲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만나기 직전 오른쪽 잔디 속에 서있는 시인 김수영을 보기 위해 진지하게 걸음을 옮겼던 시절이다. 내가 눈여겨 본 건 그의 시 ‘풀’이 아니라 동판에 양각된 얼굴이었다. 깡마른 얼굴, 퀭한 눈에서 묻어나는 그의 ‘시인다움’은 문학에 대한 어설픈 결기를 지상의 양식으로 삼으려는 청춘들에게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어디 나뿐이었을까. 그때 도봉산서원 터로 기어오르던 평상복 차림의 청춘 대부분은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김수영의 얼굴을 보는 게 목적이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페르-라셰즈 묘지를 찾아가는 동안 ‘생각하는 보폭’으로 길을 걷던 고종석처럼, 시인 김수영으로 종합되어질 생각의 실마리들을 입에 물고 걸었을 것이다. 이럴 때의 길은 그 길이에 상관없이 ‘생각의 숙주’다. 물론 이런 장면들은 ‘전통적 의미의 모든 것이 불가능해져버린’ 요즘 같은 시대엔 한없이 무거운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의 걷기가 포기해야 할 덕목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 주일의 시작을 으레 그렇게’ 했던 고종석처럼, 당신 역시 특정한 목적지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걸어보는 건 어떤가. 물론 그 목적지와 길 위의 생각이 반드시 어떤 의미를 내포할 필요는 없다. 그건 일상이 아니라, 일상성을 벗어난 퍼포먼스일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의 제안은 어떤가. 뉴욕에 사는 소설가 폴 오스터가 사진작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소피 칼에게 제안했던 방법, ‘뉴욕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소피 칼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될 교육 입문서’의 내용이다. 소피 칼, 폴 오스터가 쓴 <뉴욕 이야기 - 고담핸드북>(마음산책)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이렇다.

뉴욕이야기-고담핸드북

“이 도시의 한 장소를 선택하세요. 그리고 그곳이 당신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세요. 그곳이 어디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요. 길의 한 모퉁이든, 지하철 입구든, 공원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든. 오래전부터 그곳을 책임져온 사람처럼 그렇게 당신이 그곳을 맡으세요. 그곳을 깨끗이 치우고, 아름답게 만드세요. 마치 그곳이 당신 존재의 연장인 것처럼, 마치 당신 정체성의 일부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집에 대해 갖고 있는 그런 애착처럼 그곳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을 가지세요.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 가세요. 그곳에서 1시간 동안 머무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찰하세요. 길을 지나가거나 혹은 멈춰선 사람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록하세요.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으세요. 일상의 관찰들을 기록하세요. 그리고 이 사람들에 대해, 이 장소에 대해 혹은 당신 자신에 대해 어떤 것을 알 수 있는지를 한번 보세요. 가능하다면 매번 그들에게 말을 건네세요. 그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를 때는, 날씨 이야기로 말을 꺼내세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소피 칼은 폴 오스터의 제안에 발맞춰, 맨해튼의 그리니치와 해리슨 가가 만나는 사거리의 공중전화 부스 중 오른쪽 것을 선택해, ‘고담핸드북’의 매뉴얼대로 일상적 이벤트를 벌이기 시작했다. 결과? 폴 오스터처럼 매력적으로 제안하긴 글렀을지도 모르지만, 어떤가, 이제 당신 차례다.

글_ 자유기고가 문미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