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李賢宰 정신문화원장 부인 김요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헌신적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여성.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삶이 충만한 오늘날 도시인의 사회에서는 「국보급 골동품」같은 존재.이 사람이 바로 이현재(李賢宰)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의 반려자인 김요한(金窈漢.60)씨다.서울대 총장.국무 총리 등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李원장이 「청빈한 양심가」로서 자리매김을해올 수 있었던 뒤안길에는 35년간을 조용히 뒷바라지해온 부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거듭된 사양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찾아간 기자를 몸에 밴 겸손과 온화한 성품 때문에뿌리치지 못한 金씨는 『3남1녀인 자녀들 기르고 아흔이 넘은 시어머니 모시며 가정을 꾸려나간게 인생의 전부』 라고 입을 열었다. 집앞 골목길에서 기자와 맞닥뜨린 金씨는 수수한 커트머리에 평범한 투피스 차림.백화점에서 옷을 사본적이 없다던 풍문대로 평범한 「동네 아낙네」같은 차림이었다.그러나 인자한 눈매,마음에서 우러나는 평정심으로 아담한 체구 전체에서는 범 접할 수 없는 기품이 우러나오고 있어 결코 범속하지 않음을 일러주고있었다.서울大 의대교수.보사부 장관을 지낸 고(故)김성진(金晟鎭)씨의 딸인 그는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한 이듬해인 60년,중매로 만난 李원장과 결혼하면서 가난한 선 비 아내로서의 삶을살아왔다.
많으나 적으나 남편 월급만으로 꾸려가느라 자가용은 커녕 택시도 타본적이 거의 없이 전철과 버스만을 타고 다닌다는 金씨는 불만이 없느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그렇게 사는게 당연한 것아닙니까』며 현답(賢答)을 한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데는 시어머니 임수기(林守基.92)여사를모시는 일을 떼놓고 말할수 없다.주위 사람들에게 이름난 효부(孝婦)로 알려진 金씨는 李원장의 국무총리 시절,공관에 기거하기를 거절한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창천동 본가를 왕래했을 정도.요즘도 『올해는 김장을 백포기 담가라』『메주콩은 두말만 쒀라』는 등등 시어머니 말씀대로 살림을 한다는 金씨는 밤에는 아예 노환의 시어머니 곁에서 새우잠을 자며 시중을 들고 있다.
세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에도 베이비푸드를 떠먹여드리고 화장실가는 시어머니를 부축하느라 잠시도 쉴틈이 없을 정도.허나 그는 『누구든 나처럼 어른 모시고 살지 않느냐』며 당연한듯 말한다. 『나도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안했다면 거짓말이겠지요.그러나 이렇게 살아오고 있는데 대해 후회해 본적은 없습니다.』 한집에 사는 둘째 며느리는 직장생활을,큰 며느리는 학업을 계속하는등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며느리들을눈치채지 않게 돌보아주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의 「못이룬 꿈」에 대한 격려인지도 모른다.
『말없이 믿음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남편에 대한 유일한 내조지요.』 그는 이달 중순 남편이 연구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난 후에도 언제나 처럼 그렇게 할 것이란다.
〈文敬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