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줄잇는 사고.생명경시 한국,야만사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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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백명의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수많은 부상자와 재산피해를 낸 대구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 사건은 한국문명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문명의 척도는 생명존중의 수준이다.
국민들이 외식을 자주 하고 자동차를 많이 굴리고 해외여행을 한다고해서 그 나라가 문명국일 수는 없다.
단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귀히 여기고 개인의 아픔을 공동체의 아픔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는 마음들이 가득찬 나라야말로 문명국의 이름에 값할 수 있다.
돌이키고 싶지도 않은 지난해 일련의 사건들이「생명존중의 문명척도」로 봤을 때 우리사회가 야만상태임을 분명히 보여줬건만 아무도 책임있게 야만상태를 벗어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못했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각히 생각해야할 일은 개혁의 대상을 새로 설정하고 물샐틈없이 가동하는 안전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형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유사사고가 계속 재발하는 것은 미시적인 사건자체에 매달려 책임자를 색출하는데만 그쳤을 뿐 「안전마인드」의 형성과상호견제의 「시스템」 확보는 관심의 초점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개혁이니 세계화니 그토록 외쳐댔지만 「사고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지고 있는 것도 개혁의 목표를 제대로 찾지못했을 뿐 아니라 개혁을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마련하지 않은것과 관련있다고 생각한다.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사고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말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개혁의 목표는 「GNP높은 경제1등국」이기 보다는 「생명을 귀히 여기는 문명국」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대국은 수단으로,생명존중의 문명국은 목적으로 분명히 자리매김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같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개별시민.사회단체.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사법부.교육기관.언론.기업.감리기관.경찰.구급기관등 관련 당사자들이 치밀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체크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개혁 목표의 선명한 설정, 사고방지를 의식이나 말이 아닌,시스템을 통해 이뤄낸다는 전략적 사고를 대통령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제안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문명인이 되기는 어렵지만 야만인이 되기는 쉽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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