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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맞은 고로쇠 채취 현장 … 나무에 구멍뚫고 빨대 꽂자 뚝! 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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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하얗게 눈이 덮인 충북 영동군 상촌면 민주지산 해발 800m 지점에서 손춘식(57·<左>)씨 등 농민들이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닐봉지를 매달아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사진=프리랜서=김성태]

26일 오전 9시 충북 영동군 상촌면 민주지산 자락. 주민 6명이 두툼한 옷차림으로 인근 민주지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에 구멍을 뚫는 천공기,도시락 등이 들어있는 배낭 하나씩을 등에 맨 이들이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30여분쯤 걸어서 도착한 곳은 해발 800여m 지점. 주민들은 각자 흩어져 천공기로 고로쇠 나무 한 그루당 4∼5개의 구멍을 뚫었다. 직경 1∼3㎝로 뚫은 구멍에는 수액이 흘러 나올 수 있도록 길이 3㎝가량의 빨대를 꽂았다.

빨대 끝에 5ℓ가량의 수액을 담을 수 있는 비닐봉지를 묶어 매달자 곧바로 수액이 한방울씩 떨어졌다. 농민들은 25일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쌓여 발목까지 빠지는 눈 밭을 다니며 오전 내내 구멍 뚫는 작업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오전에 한 사람당 10여그루의 고로쇠 나무에 비닐봉투 450여개를 매달았다.

점심 때가 가까워진 오전 11시30분쯤 수액 채취반장격인 손춘식(57)씨가 식사를 하자는 신호로 호르라기를 너댓번 불자 농민들은 모여 각자 싸온 도시락을 꺼냈다.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씩도 걸쳤다.

이들은 점심을 먹으면서 수액이 많은 고로쇠 나무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등의 정보도 교환했다.

식사를 끝낸 오후 1시쯤 농민들은 사나흘 전에 설치해 고로쇠 수액이 가득 찬 비닐봉지 수거에 나섰다.

이들은 비닐봉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밑 부분 매듭을 풀고 플라스틱통(18ℓ)에 받아 해발 450m지점에 설치된 50ℓ의 대형 통에 부었다. 이 수액은 산 아래까지 고무호스로 연결된 집수정에 모아진다.

이들은 이날 50통(한통당 18ℓ)의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오후 6시쯤 하산했다.

충북 영동 민주지산을 비롯해 충북 보령 성주산,전남 장성 백암산·구례 지리산·광양 백운산을 비롯해 경남 거제 노자산 등 전국 유명산에서 이달 초부터 고로쇠 채취가 일제히 시작됐다. 고로쇠 수액은 위장병과 고혈압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액 채취지역에 관광객이 몰려 농한기 농민들의 소득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영동군 주민들은 지난해 고로쇠 수액 1000통(한통당 18ℓ·5만원)을 채취해 5000만원의 수입을 올려 플라스틱통 구입비 등 각종 경비를 빼고 농가당 200여만원을 벌었다. 올해는 수액 채취량이 늘어나 농가당 300만원 정도의 소득이 예상된다.

산림청은 올해 전국의 고로쇠 수액 채취량은 360만ℓ로 농민들이 100억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수액 훔쳐먹는 얌체 등산객=고로쇠 수액 채취에 나선 충북 영동군내 농민들이 애써 채취한 수액을 훔쳐가는 얌체 등산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7일 군과 주민들에 따르면 10일부터 상촌면 민주지산과 황간면 백화산 일대 29.7㏊의 산림에서 고로쇠 수액 채취가 시작된 뒤 애써 뽑아놓은 수액을 훔쳐가는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200여 그루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손모(51) 씨는 “나무마다 수액을 받기 위해 매달아 놓은 비닐봉지를 통째로 떼어가거나 수액만 쏟아가는 도둑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1주일 정도 매달아 놓은 지름 20㎝, 길이 1m의 비닐봉지가 수액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하나 최근에는 수액이 모아지는 비닐봉지가 드물다”고 호소했다.

도난이 잇따르자 일부 농민들은 비닐봉지 대신 자물쇠를 채운 대형 플라스틱 통을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수액 채취는 직경 10㎝이상 나무에서만 채취할 수 있으며 국유림에서 채취 할 경우 소득의 30% 를 산림청에 납부해야 한다.

글=서형식 기자 , 사진=프리랜서=김성태

◇고로쇠 어떻게 마시나=수액은 당류 1.35∼3.14%, 무기염류 1㎎당 29.5∼34.8ppm, 비타민 등이 함유돼 있다. 영동군 관계자는 “고로쇠 수액은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밤새 찜질방 등 뜨거운 방에서 고추장에 오징어·북어를 찍어 먹으면서 땀을 흘리며 마시는 것이 제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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