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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이후 쿠바는 어디로 특파원 6신·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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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관통하는 잘 정돈된 5번 도로. 시내 제한속도가 시속 60㎞지만 왕복 6차로의 이 길만은 80㎞까지 낼 수 있다.

300여 건의 암살 기도를 피해 왔다는 피델 카스트로의 출퇴근길이었던 덕이다. 늘어선 야자수들이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설 수도 좌회전할 수도 없다. 20m마다 경찰이 한 명씩 서 있다. 혹시 있을 피델 암살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위협 속에서 사회주의를 지켜가며 49년 장기 집권했다는 게 피델로서는 큰 자랑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침투를 봉쇄하긴 ‘영원한 혁명가’로서도 역부족이었다.

25일(현지시간) 아바나 서쪽 쇼핑센터 ‘갤러리아 코메르시아’. 크지 않지만 오메가·몽블랑·샤넬 등 꽤 많은 명품이 진열돼 있다. 자본주의를 적으로 삼는 쿠바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10분쯤 더 가면 ‘마리나 헤밍웨이’란 눈부신 선착장이 나타난다. 1960년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낚시대회를 개최하자 피델이 찾아와 함께 고기를 잡던 곳이다. 그런 곳이 지금은 외국인 선착장으로 변했다. ‘체 게바라를 모범으로 삼자’고 적힌 선전판 옆엔 새하얀 요트가 정박해 있다. 근처엔 수영장·식당 등 고급 편의시설이 즐비하다. 3번 도로엔 ‘아멜리에’란 서양식 샌드위치점이 들어서 있다. 특별한 음식점인 까닭인지, 검은 조끼에 나비 넥타이까지 한 웨이터들이 샌드위치를 나른다.

12달러의 월급만으로 살아가는 쿠바인들에겐 물론 별천지다. 미국에 돈 잘 버는 친척이 있거나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많아 달러가 꽤 있어야 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박탈감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24일 형 피델에 이어 권좌에 오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인민을 잘 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 의지는 24일 수락 연설에 잘 배어 있다. 그는 “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 경제를 튼튼히 해 인민의 물질적·정신적 기본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 소속 기관 숫자를 줄이고 과다한 회의, 규제, 허가 등을 없애겠다”며 과감한 규제 철폐를 선언했다. 심지어 중앙 집중 원칙에 어긋나는 듯한 말까지 했다. 라울은 “지방조직이 훨씬 능률적일 수 있다”며 “최근 분유 배급처를 13개 도 단위에서 64개 군 단위로 넘기면서 3000만 달러어치인 6000t을 아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쿠바 체제에선 매우 획기적이다. 그런데도 많은 쿠바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학 4년생 알베르토 사파테로는 “앞세대는 ‘나아진다, 나아진다’는 정부 말만 믿고 50년을 기다렸지만 우리 세대는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깊은 것이다. 그래서 라울이 중국식 개혁 모델을 추진한다 해도 현재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회사원 호세 알롱소는 “중국엔 경제 발전을 추진할 자원과 인력이 있지만 쿠바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달리 쿠바는 외자 유치에 소극적이어서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조영수 KOTRA 쿠바 관장은 “쿠바 정부가 지분의 51% 이상을 갖는 합작 투자 외에는 외국 회사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라울이 넘어야 할 산은 매우 높은 것이다.

아바나(쿠바)=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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