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영화탄생 100돌의 방화 현주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얼마전에 열렸던 「영상물의 폭력성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한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대학교수.정신과 전문의와시민단체대표로 이어진 주제발표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발표자들을 진땀 흘리게 만든 것은 한 영화제작자의 엉뚱한(?) 주문이었다.
『최근 3년동안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의 제목을 모두 대보라』는 것이었다.질문자의 의도야 『바쁘다는 핑계로 1년 가야 영화 한편 안보는 당신들이 영상물의 악영향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고 추궁함으로써 발표자들을 골탕먹이겠다는 짓궂음 에서 나온 것이 역력했지만 나름대로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관객이 몰린다는 영화관에서도 중년이상의 나이든 관객을찾아보기 힘들고,주변을 둘러봐도 영화관에 가본지 몇년 됐다는 이들이 수두룩하다.먹고사는 일에 쫓기는 고달픈 이들에게야 영화구경이 사치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모임에 다 쫓아다니며 수다떨고 술마시고 사우나 하고 헬스클럽 가고 골프 칠 시간은 있어도 1년동안 영화나 연극 한편 볼 짬이 없다면 정말 딱한 일이다. 올해는 영화 탄생 1백주년이 되는 해다.어느 영화 시상식에선가 우리들의 배우 안성기는 수상소감 대신 이렇게 호소했다.『1년에 한편씩만 우리 국산영화를 봐 주십시오』라고.애국심에서가 아니라도 바쁜 어른들이 영화관에 가봐야할 보다 절 실한 이유는 따로 있다.
텔레비전 영화를 놓고도 선정성.폭력성 시비가 심심찮지만 그렇게 가위질 잘된 안방극장용 말고 우리 아이들이 가득 들어찬 컴컴한 영화관에서는 도대체 어떤 필름들이 돌아가고 있는지 현장시찰하는 것이다.
교육열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 땅의 부모들에게 가장 설득력있는 일이 아닐까.영화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뒷골목에 숨어있는 어두컴컴한 비디오방도 기웃거려본다면 금상첨화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