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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스테디셀러] 법정스님 '무소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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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범우사 윤형두 대표는 법정 스님의 전화를 받고 무척 기분이 좋았다. 스님이 그의 대표작인 '무소유'를 문고본으로 복간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윤대표는 한 달 전 스님에게 '무소유'를 문고로 다시 내는 걸 요청하는 편지를 썼었다. 복간본은 이달 말 서점에 나올 예정이다.

'무소유'는 범우 에세이 문고 시리즈의 2번이다. 하지만 1999년 이후엔 단행본 형태로만 팔렸다. 200종으로 구성된 문고 시리즈에 '이빨' 하나가 빠졌던 것. 그간 출판사에는 이를 채워 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줄을 이었다. 덕분에 '무소유'를 더욱 저렴한 가격에 읽을 수 있게 됐다. 단행본이 6000원인데 비해 문고본은 2800원이다.

'무소유'는 76년 4월 문고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 당시 시리즈 1번은 피천득씨의 '수필'이 기록했다. 이후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우리 시대 불변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대략 250여만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두번째 책이다. 스님은 73년 '영혼의 모음'이란 수필집에 '무소유'를 발표했으나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고, 3년 뒤 '무소유'란 타이틀로 새 책을 내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한번 찍을 때마다 1만부를 발행할 만큼 기세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러면 '무소유'는 어떤 내용일까. 책에는 모두 35편의 담백.명징한 수필이 실려 있다. 대표작은 물론 '무소유'다. 3년 간 애지중지.애면글면 길렀던 난초를 놀러온 친구에게 안겨준 스님이 난초에 대한 그의 집착을 돌아보면서 소유욕에 따른 개인.사회.국가 간의 '싸움'을 참회하고 있다.

'무소유'는 지난 30여년 한국 사회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 사막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경쟁 일변도로 치달아온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제공했다. 이것저것 내 몫 챙기기에 바쁜 우리들이 비록 실천은 하지 못하더라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그런 마음의 평화를 노래했다. 도피적이든, 아니면 창조적이든 '크게 버린 만큼 크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제시한 것이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김수환 추기경), "나무 한 그루 베어내어도 아깝지 않은 책"(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 같은 칭찬도 받았다. 출판사에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돈 문제로 옥고를 치를 때 "'무소유' 한번만 읽었더라면"이란 광고를 내기도 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무소유의 역리(逆理)"는 모든 게 혼탁한 요즘 더 그리운 것 같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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