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홍보 우먼파워 ‘여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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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방자치단체 홍보에도 ‘여풍’이 거세다. 외부 인사 상대와 술 자리 등이 많아 남성들의 전유물로 생각돼 온 홍보과장·계장 등에 여성들이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홍보 우먼들은 여성들의 꼼꼼한 성격과 섬세한 일 처리가 시·군정을 알리는데 딱 맞는다고 말한다.

◇마당발에 튀는 아이디어=고참 서기관인 전남도의 배양자(53)씨는 전국 16개 시·도 중 유일한 여성 공보관이다. 1999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홍보지원계장을 지냈으며, 2006년 8월부터 공보관을 맡아 전남도의 대 언론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48개언론사를 상대하려니 힘들다”고 말했다.

여수시도 공보담당관에 2007년부터 김양자(52) 사무관을 앉혀 놓고 있다. 그녀는 1998년부터 4년8개월 동안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 지원단의 공보계장을 지냈다.

화순군 최옥경(50)씨는 2002년 이어 지난해 5월부터 두 번째 홍보계장 일을 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의 김상선(49)계장은 2006년 7월 민선 4기 출범과 함께 홍보 업무를 맡았다. 팀원 4명을 이끌며 매일 보도자료를 내고, 계절별로 홍보지를 만드는 등 ‘지자체의 입’ 역할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임실군의 김인숙(47)계장은 2002년 공보업무를 시작해 무려 5년간이나 자리를 지켰다. 민선 첫 여성 공보계장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군수 세 명이 중도 하차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지켜 보기도 했다.

마당발이며 아이디어가 좋은 남원시의 김정남(52)과장은 1년6개월째 홍보 업무를 전방에서 지휘하고 있다. 그녀는 “홍보 우먼은 여성 공무원 증가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고, 남·녀를 구분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영역 파괴 바람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지난해 11월 지방신문 기자과 국무조정실 전문위원 등을 지낸 배미경(36)씨를 기획홍보담당으로 발령했다. 그녀는 정책홍보 블로그 운영,만화 콘텐트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제시에는 지방신문 기자 출신인 조덕희(43)계장이 계약직으로 최근 홍보실에 합류했다.

전북교육청은 지난달 이선옥(55)사무관을 전국 교육청중 첫 여성 공보관으로 임명했다.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면서도 섬세함을 겸비해 최규호 교육감이 낙점했다. 이 공보관은 “사안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문제점을 잡아내는 능력은 여성들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신문·방송이나 대인 관계도 부드러운 접근이 가능하다” 고 말했다.

◇출·퇴근 없고 폭탄주에 곤욕=홍보 책임자들은 사실상 휴일이 없다. 선출직인 단체장과 움직임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현안이 생기면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김상선 무주군 홍보계장의 경우 휴일에도 거의 빠짐없이 사무실에 나온다. 특히 지난해 기업도시 지정, 태권도공원 특별법 제정을 앞두고는 국회·총리실 방문 자료 등을 만드느라 새벽 2~3시에 퇴근하기 일쑤였다.식사를 거른 적도 많았다.

김인숙 임실군 계장은 수확철이나 향토축제 등 행사 때면 오전 4~5시에 달려나가곤 했다. 가족들에게는 “외국으로 교육을 갔다고 생각하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자녀 생일은 물론 가족 행사 참석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성 홍보과장·계장들은 사무실 밖 업무가 많고 주로 기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술자리가 많고, 이와 관련된 해프닝도 많다.

술을 한 방울도 못하는 무주군의 김 계장은 소주 반 잔을 먹고는 쓰러져 집으로 실려 간 적도 있다.

전북교육청의 이 공보관은 “부임 초 남편한테 ‘술 먹고 집에 들어오는 일 있어도 타박하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주량이 소주 1~2잔에 불과했던 그녀는 폭탄주를 최고 5잔까지 마신 적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기자들이 “음식점·술집 등서 만나 정보를 교류할 필요가 있는데 불편하다”고 주장해 여성 홍보 담당자가 6개월 만에 교체되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 홍보 우먼은 때로 술을 권하는 기자들과 맞서 몇번씩 구토하는 등 몸을 던지면서도 “기사를 제대로 써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사람이나 정보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 재미가 있고 보람이 크지만, 기관 전체 업무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하는 등 책임감도 크다”고 말했다.

장대석·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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