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와인, 출세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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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5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 경축 연회장에는 다소 생소한 건배주가 올랐다. 화이트와인처럼 노르스름하고 투명한 색깔, 코를 톡 쏘는 식초 향에 이어 새콤달콤한 과일향, 레드와인을 연상시키는 텁텁한 뒷맛을 담은 술이다. 경북 청도군의 특산물 반시(납작감)로 빚은 ‘감 와인’이다. 이 지역 주류회사 청도와인의 ‘실라리안 감그린’ 2006년 빈티지가 연회 건배주로 선정된 것이다. 2001년부터 감 와인 개발에 매달려온 하상오(49·사진) 사장은 “해외의 귀빈들이 우리 술을 맛본다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맘이 설렜다”며 웃었다.

그는 1990년대 중견 음료업체와 손잡고 식혜를 캔 음료로 만들어 식혜 음료 시장을 1000억원대 규모로 키워놓은 주역이다. 한때 그의 식혜 납품회사는 200억원 넘는 연매출을 올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2000년대 초반 이를 접은 건 납품을 받아주던 기업이 자체 설비를 갖춰 식혜 캔을 생산한 때문이다. ‘평생 엿기름만 납품하는 데 안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감 와인 개발에 착수한 건 그 무렵이다. 공장이 있던 청도는 홍시·곶감의 원재료인 떫은 감으로 유명했다. 고급 감식초 원료로도 애용된다. 하 사장은 감식초를 마시다 문득 ‘감 와인’을 떠올렸다. “식초 바로 전 단계가 알코올 아닙니까. 이 단계에서 보존을 잘하면 좋은 술이 되겠다 싶었지요.”

감은 당도가 22~26브릭스(당도의 단위) 정도로 높다. 떫은 맛을 내는 타닌도 풍부하다. 프랑스산 포도에 비해 손색이 없는 과실주 원료라는 것이다. 그는 발효를 좀 더 공부하려고 경북대 식품공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이어 계명대·경북대의 연구팀과 힘을 합치고 국내 주류회사 와인 전문가 두 명을 영입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2004년 신제품이 나왔다. 새로운 발상과 새콤달콤한 맛 덕분에 매출이 꾸준히 늘었다. 지역 특산물을 잘 활용했다는 점을 높이 사 지난해 청와대 추석선물로 1만1000병을 납품하기도 했다.

하 사장의 다음 목표는 세계에 감 와인 맛을 알리는 것이다. 이미 미국·일본 무역업체와 수출 상담에 들어갔다. “술은 그 나라의 문화잖아요. 맛있고 뒤끝 없는,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술을 만들겠습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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