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맨손으로 중국서 매출 1000억 기업 만든 이기영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호 13면

김대성 대학생 사진기자

-중국 창춘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CEO인데도 항상 그런 차림인가.

"中서 사업하려면 노동판까지 가 보며 투지 키워야"

“세상과 싸워 나가는 전투적 자세를 갖추려고 군복 분위기의 옷만 입는다. 나는 군인이나 독립군이라는 생각으로 사업에 임한다. CEO란 어차피 경쟁, 즉 싸움으로 지새는 지휘관이라는 생각에서다. 한국 남자들은 신사복을 입었을 때와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의 행동과 자세가 다르지 않은가. 회사 대표가 자신을 낮춰 낡은 군복을 입으면 직원들도 이를 따라 고객에게 고개를 숙이는 효과도 있다.”

-별도의 집무실도 없다던데.

“내겐 사장실은 필요 없다. 늘 현장과 고객을 직접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한국산 무쏘를 힘들게 들여와 타고 다니는데, 그곳이 나의 이동 사무실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은 천막 하나면 족하다.”

-요즘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이 좋지 않다. 특히 인건비 문제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고민이 많은데.

“인건비 같은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는 사업을 한다면 당연히 내다봤어야 한다. 중국에서 중국인의 돈을 먹으려면 현지 지형지물에 대한 정보, 문화 지식, 그리고 언어 구사 능력으로 무장하고 나가야 한다. 일부 기업을 보면 전혀 기본 바탕도 없는 사람이 파견돼 와선 임기 내내 사업은 말아먹고 골프만 싱글이 되어 돌아간다. 그러면서 실패의 원인을 환경 변화에만 전가한다. 그래선 안 된다. 중국인과 경쟁해 이기려면 그들 못지않게 피나게 노력하고, 그들보다 먼저 내다봐야 한다. 그게 선견지명이다. 중국은 더 이상 돈만 들고 오면 돈을 버는 나라가 아니다. 개인사업 하러 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이기지 못한 사람이 중국에서라고 성공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한국인은 중국인과 비교해 끈기, 성실성,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비롯한 특유의 장점이 많은데 이를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

-본인은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중국의 변화 양상을 보곤 더는 저임금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미 2003년부터 인력을 덜 쓰는 새로운 분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겼다. 사업 구조와 방식도 확 바꿨다. 고급인력을 소규모로 쓰는 사업을 찾다가 양한방 협진 병원과 신약 개발, 그리고 인터넷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신약 개발 사업은 어떻게 하나.

“한방이다. 창춘에 동물실험실을 두고 아토피·건선 등에 쓰는 한약 시럽 등 피부병약을 전문으로 개발하고 있다. 병원에서도 쓰고, 그 권리를 제약회사에 매각해 이익을 나누고 있다. 이렇게 지식을 파는 것이 공장 만들어 돌리는 것보다 낫다. 한방 신약을 개발하면 그 보고서를 통째로 판다. 고부가가치 지적재산권을 생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구만 한다. 농축하는 제품이라면 원료를 만들어 공급한다. 신약 허가를 받거나 사람을 고용해 생산할 필요가 없다. 복잡한 관청업무와 생산인력 등이 필요 없어 지식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에만 매진할 수 있는 구조다.”

-병원은 일상적인 양한방 협진만 하나.

“양한방 약물에 목욕을 결합한 새로운 치료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한국인을 위해 중국어 교육까지 접목한 퓨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석 달, 짧으면 한 달 정도 머물면서 아토피 같은 고질병을 다스리면서 그 시간 동안 중국어는 물론 중국 사회와 중국인에 대한 특강도 듣게 된다. 시간이 아까워 치료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 착안했다. 1개월 과정도 있다. 수요를 미리 내다보고 하는 신종 비즈니스다.”

-그러면 기존의 식당 사업은.

“2004년에 구조조정을 했다. 직영 식당 38개 가운데 6개만 남기고 12개는 프랜차이즈로 넘겼다. 나머지는 폐업했다. 그러면서 사업구조도 개혁했다. 우선 매장에는 조리사가 없다. 중앙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만들고 진공 포장해 공급한다. 품질이 유지되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으며, 구조를 단순화함으로써 사람으로 인한 사고나 누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식당 사업은 이제 현상 유지만 하는 건가.

“아니다. 이익이 적게 나는 곳은 과감하게 문을 닫고, 새롭게 발전하는 중국 곳곳에 새 점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 개념도 중국의 발전에 맞춰 더욱 개성화·고급화했다. 과거엔 인테리어를 정감 있고 가족 중심적인 분위기만 연출하면 됐는데, 이제는 고급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철제구조물 등 설치미술 작품을 식당 곳곳에 전시했다.

‘작품 속에서 식사’. 이런 컨셉트가 먹혀 고수익 구조로 가고 있다. 점포 수는 적지만 이익은 더 많이 내고 있다. 고급화와 공격적 마케팅에서 활로를 찾은 것이다. 중국은 싸고 허름하다는 것은 외부에서 갖는 편견일 뿐이다. 물론 시골로 가면 그렇지만, 최소한 사업을 할 수 있는 대도시는 초현대적인 소비를 한다.”

-여러 가지 사업을 동시에 벌이고 있는데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나.

“술 마시지 않고, 잠을 조금 줄이는 등 시간을 아끼면 가능하다. 남들이 8시에 일어나면 나는 5시에 일어나면 된다. 하루에 6시간을 이렇게 아끼면 매달 180시간 남는다. 그 시간을 웹 서핑을 하는 등 정보를 얻고 창의적 발상을 하는 데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새로 출범하는 한국 정부에 교민으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게 여권에 한자를 넣는 것이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데 필수적이다. 예로 중국에서 Z(취업)비자만 있으면 한글과 영문으로 된 한국 여권으로도 땅을 살 수 있지만, 토지를 팔려면 한자가 들어 있는 신분 증명서가 필수적이다. 여권에 한자를 넣는 간단한 개선으로 교민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3년 전부터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인을 위한 3박4일짜리 전략리더십 교육을 해왔다. 중국에 대한 지식을 넓히면서, 노동판에 가 밑바닥 일도 해보면서 투지를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과정이 끝나면 혈서로 태극기를 그리는 젊은이도 있을 정도로 뜨거운 과정이다. 이를 확대해 젊은이들에게 한국 혼을 불어넣는 교육센터를 만드는 게 꿈이다. 한국인의 장단점을 따지고, 장인정신을 기르면서 패기를 길러주는 교육을 하고 싶다. 가난에 허덕이던 나도 맨손의 경영학으로 일어섰는데,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이 뭔들 못하겠나. 문제는 정신력이다.”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

“막내딸이 대학에 합격했는데, 입학 전에 1주일 중국에 데려가 가난한 지역을 함께 무전여행하면서 정신력을 길러주려고 왔다. 나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이런 교육으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

-어떤 기업인으로 기억되길 원하나.

“한때 파파스의 이익금으로 중국 어린이 40여 명에게 무료로 심장병 수술을 해주면서 ‘아름다운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게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그냥 ‘한국인 이기영’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이기영(李起榮)

1956년 전주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정규 학력이라곤 중학교 중퇴가 전부다. 한·중 수교 전인 89년 늦깎이 학생으로 중국으로 건너갔다. 하얼빈(哈爾濱)의 헤이룽장(黑龍江) 의대와 창춘(長春) 중의학대학에서 공부했으며, 2004년 하얼빈 중의약대학에서 중의학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생 신분이던 94년 한국음식점 체인인 파파스(PAPAS)를 창업, 최대 38개의 직영점을 운영하며 연매출 250억원이 넘는 ‘식당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2003년엔 전공을 살려 한양종합병원(韓陽中西醫結合醫院)을 세우고, 부설 신약개발연구소를 차려 아토피·건선 등 피부 관련 한방 신약 개발과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인터넷 부동산 사업에도 진출했다. 전체 사업을 합쳐 연매출이 1000억원을 넘는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인을 돕고, 한국 젊은이의 투지를 길러주는 새로운 일을 구상 중이다.

『13억을 경영하라』 『맨손의 경영학』『중국, 그리고 중국인』 등 저서에서 원칙과 양심, 그리고 한국인의 진취성을 강조하는 특유의 경영술을 강조하고 있다. 어려서 지독히 가난했을 때 누군가 찍어준 ‘밥 동냥하는 사진’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넣어두면서 초발심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