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전수자>1.양주 별산대놀이 金順姬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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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세계화바람을 타고 외래문물이 밀려들어와 우리의 전통가치와 문화를 위협하고 있다. 외래문화의 범람속에서 우리의 멋과 전통의맥을 이어가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세계화의 한 지표가 될것이다.
그런점에서 본지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의 기능전수자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철학을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아 하하하,그래 늙은 중놈이 승속(僧俗)이 가이(可異)어든인가에 내려와서 계집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데리고 농탕을 쳐.(중략)너 이놈 천부당 만부당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인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취발이의 대사는 이처럼 별스러울 정도로 걸직하다.
8과장8경 전체중에 『건곤(乾坤)이 불로월장재(不老月長在)하니 적막강산(寂莫江山)이 금백년(今百年)이라』같이 이따금 문자속이 깃들여 있는 호통도 나오지만 옴중.눈끔적이.말뚝이.왜장녀.취발이.샌님.미얄할미등 등장인물 이름만 봐도 그 렇고,상놈이양반을 나무라는등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대목대목마다 민초들의 속을 후련하게 훑어주는 것이 요즘 「고발」운운하는 여느 장르도찜쪄먹을 정도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다른 우리나라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음악 반주에 춤이 추가되고 거기에 묵극(默劇)적인 몸짓과 동작이 따르고덕담.재담의 사설과 노래가 곁들여지는 종합공연예술.그중에서도 상좌연닢과 눈끔적이.왜장녀.애사당.소무.노장.원 숭이.해산모.
포도부장.미얄할미역은 대사없이 춤과 몸짓등 동작으로만 연기하는것이 특징.
때문에 해산모.미얄할미.소무역을 맡고 있는 보유자 후보 김순희(金順姬.62)여사는 별산대 입문 30년이 넘을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한채 춤만 춰온 셈이다.『새색시적에 동네 어른들이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 것을 몰래 훔쳐보고 집에 와 서 문을 걸어 잠근채 춤을 춰보곤 했는데 당시 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던 외사촌오빠(89년 작고한 故 柳敬成씨)의 눈에 들어 본격적인 꾼이 됐습니다.』 金여사가 맡은 해산모 역할은 절에서 불목하니노릇을 하던 노총각 취발이가 두명의 소무(小巫=색녀)와 놀아나는 파계승 노장(老長)을 호통쳐 쫓아버리면서 한 계집을 강제로꿰차고 임신시켜 태어나는 아들 마당쇠를 받아내는 5분여간의 팬터마임이 전부.
모처럼 애를 배 기고만장해 있는 취발이부부 사이에 동자인형을안고 「깨끔깨끔 옴죽옴죽」 익살맞은 춤사위를 날리며 비집고 들어가 고추를 들어뵈고는 물러나지만 애씻음질이나 말없는 몸놀림은그 아니면 도저히 맛이 나질 않는다.그 때문에 말이 행정상 「후보」지 이미 별산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워낙 걸진 소리가 많아 처음 할 때는 얼굴도 화끈거렸지만 이제 남편은 물론 장성한 2남1녀의 자식들까지도 격려해 주고 있어 재미있습니다.하지만 다른 회원들이 직장생활하느라 함께 변변히 연습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는 5월5일 마을뒤 전수회관에서 가질 예정인 제28회 정기공연을 앞두고 몸풀이가 한창인 金여사는 진갑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춤사위만은 여전히 20대 「소무」의 그것이었다.
李晩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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