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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철도길 마련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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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 건설은 많은 진기록을 남겼다. 국내에서 제일 긴 10㎞짜리 황학산 터널(충북 영동~경북 김천)을 뚫었는가 하면, 서해대교에 맞먹는 길이 7㎞의 풍세교(충남 천안)도 세웠다.

이같은 대역사 뒤에는 묵묵히 고생한 사람들이 있다.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팔도강산을 뛰어다닌 한국고속철도 용지국 직원들이다.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한 농촌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일일이 설득해 계약을 이끌어낸 주인공이 바로 그들이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토지 수용 업무에 매달린 고성열(현 건설지원처 차장)씨는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땅금이 워낙 헐해서'(땅값을 너무 적게 쳐 줘서)였다"고 말한다.

"그래도 순박하신 분들이라 정성에 쉽게 감동하시더군요. 절대 못 판다던 분들도 바지 걷고 논에 뛰어 들어 거머리에 물려가며 잡초를 뽑으면 도장을 찍어주시곤 했죠."

"조상의 묘는 절대로 못 옮긴다"며 "정 옮기려면 20억원을 내라"고 으름장을 놓은 시골 어르신도 있었다. 그렇다고 정말 20억원을 내줄 수는 없는 일. 다섯달 동안 10여 차례 찾아가 '국가의 대사'임을 누누이 얘기하자 결국에는 "내가 돈 욕심에 20억원 소리를 했겠나"며 순순히 이장했다고 한다.

가끔씩은 막걸리나 소주.삼겹살 등으로 로비도 펼쳤다. 차훈(현 건설지원처 차장)씨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매일 소주 로비를 펼치다 입원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토지보상금을 노린 사기꾼도 많았다. "앞서 신청한 통장으로 보상금을 보내면 빚쟁이에 다 뜯겨 만져보지도 못하니 다른 계좌로 보내달라"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 그런 식으로 땅주인 것이 아닌, 엉뚱한 계좌에 입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정민수(현 건설계획처 차장)씨는 "때문에 실명 확인을 금융기관보다 더 철저히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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