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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非夢似夢의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지방선거에서 돈도,조직도,정당의 공천도 없는 후보가 당선된 것을 보고 현지 언론들은 표의 반란 혹은 이변(異變)이라는표현을 썼다.분석기사는 온통 불신.거부.회의.반발.혐오.지지철회.탈조직등 기성정치구도를 부정하는 어휘들로 점 철되었다.
드러난 결과만 놓고보면 일본 지방선거는 확실히 이변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과연 이변이었을까.아니다.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그렇겠지만 결과는 진작부터 준비되고 있었다.구조개편의 미명(美名)아래 거듭돼온 이합집산(離合集散),그리고 지진.독가스 사건에서 보여준 무능만으로도 유권자들이 기성(旣 成)을 거부할 이유는 충분했다.다만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유권자의 심회(心懷)를 헤아리지 못했을 뿐이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객은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는말이 있다.그렇다면 일본의 기성정치인들은 정치가가 되기에도 실패했고 정객의 자리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정치가 가장 우려할 것은 국민과의 사이에 인식의 갭(gap),신뢰의 갭이 생기는 일이다.국민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치인은 서쪽을 가리키는 식의 동문서답(東問西答)형 정치를 한다면 일본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아오시마 쇼크」는 언제 어디서나일어날 수 있다.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요즘 이 땅의 정치행태를 보면 일본은 오히려 양반이라는 생각이 든다.작금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소위 지도층들의 행태란 가위 꼴불견이기 때문이다. 말잔치는 무성한데 그 말이란 것이 온통 험구험담.망어.기어(綺語).양구(兩口)들 뿐이고 행보가 부산하기는 한데 그 몸놀림이란 것은 온통 패가르고 짝짓는 일들 뿐이다.
정권을 수임(受任)한 집권당의 경우를 보자.모름지기 국가적 대계(大計)에 골몰해야할 그들이 국민에게 보여준 일이란 표계산에 입각한 평지풍파(平地風波)뿐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지자제 연기 소동,행정구역개편 파동,JP축출등 일련의 작품(?)이과연 국가적,아니 그들이 내세우는 개혁적 원모(遠謀)였는지,지자체선거용 계략이었는지는 묻지않아도 국민들이 먼저 알고 있다.
요즘의 소모적 정쟁(政爭)도 집권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그렇다고 야당이 야당다웠다는 것은 아니다.당내(黨內)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정국의 파행(跛行)을 서슴지 않은 일,자신의 위상(位相)유지 내지는 상승을 위해 지역할거주의를 부추 기는 일 따위는 그 명분(名分)에도 불구하고 속내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 일에 불과했다.
그밖에 여.야 가릴 것 없이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무책임한 말 뒤집기,선심공약,담합을 자행하는 예는 일일이 거론키 어려울만큼 무성하다.
이 땅의 정치인을 지칭할때 정치가는 애저녁에 글렀고,그 행태를 보면 정객수준도 못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표계산마저제대로 할 줄 모르는 청맹과니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시대상황은 한마디로 위기일것이다. 북한핵을 둘러싼 北.美,北.日간의 미묘한 동태,북한의 한국 따돌리기남북간의 긴장관계가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데다 국제외환시장의 격동,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가동에 따른 개방의 격랑,무역마찰등이 장래를 불안케 하고 있으며 중소기업.건설업계의 부도,살부(殺父).가뭄.교통지옥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까지 어느것하나라도 마음 편하게 상대할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들에게 그런 문제들을 들이대면 그들은 늘 하던대로 현대는 위기의 시대고 난제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입에서 부지불식간에 "정말 한국에서 살고 싶지않다"는 한숨섞인 말이 튀어나올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말을 귀담아듣는 정치인이라면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그러나 표계산만이라도 제대로 하루 줄 안다면 이럴 때 무엇을해야하겠는가. 바야흐로 민심의 소재를 읽고서는 최소한이나마 그 심회를 어루만지는 언행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질 않으니 이 땅의 정치인을 청맹과니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작금의 정치를 비몽사몽의 정치라고 규정한다. 눈은 뜨고있으니 비몽인데 뜨고도 보지 못하니 사몽인것이다.
정치가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것은도덕이라고 했다.
이말은 어디까지나 이상주의자의 몫일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나 그렇더라고 최소한 정치가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할것은 민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국민들은 성장도 좋고 선진화도 좋지만,아니 OECD가입도 좋고 세계화도 좋지만 그에 앞서 사람다운 품위를 지닌 삶이보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끔찍한 살인사건 안보고 교통지옥만이라보 벗아나고 싶어한다. 세계화 그게 뭔지는 몰라도 품위있는 나라 품위있는 국민이 되고 싶다는 원망을 지니고 있다.
정치인이,지도자가 그것을 모르고 표낚기에 골몰해 오직 그런 방략만 짜고 있다면 아마도 換투기로 수백억원 날리듯 6.27선거에서 수백만표를 날리게 될것이다. 그때 국민들은 표로 이렇게말할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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