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아서 펜감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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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1930년대 2인조 남녀 은행강도 보니 파커(페이 더너웨이扮)와 클라이드 배로(워런 비티扮)를 주인공으로 한 아서 펜 감독의 1967년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Clyde)는 허무주의 영화다.인생이 따분해 발 가벗고 방안에서 심심해 하던 보니가 어머니의 차를 훔치려는 클라이드와 어울려 장난삼아 강도질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철저한 우발범죄형 인간으로 등장한다.그냥 재미로 쏘고,재미로 털고,재미로 죽인다.
범죄를 보면 성욕을 느끼는 여자와 성불구자인 남자의 만남,그들은 섹스 대신 범죄로 쾌락을 얻는 행각을 벌이고 범죄를 스포츠로 삼는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하고 나중에 『벅시』에서도 비슷한 역을 맡은 워런 비티의 인물묘사도 흥미롭지만 페이 더너웨이가 열연한 보니 파커는 분명히 만화적인 주인공이다.시가를 물고 권총을 든 포즈로 사진찍기를 좋아하거나, 두 사람의 모험담을 시로써서 신문사에 투고하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기관총을 쏘아댄다.덩달아 따라다니며 범죄행각을 벌이는 클라이드의 덩달이형 벅 배로(진 해크먼扮)와 그의 주책없는 아내도 역시 대단히 만화적인 인물형이었다.
이렇듯 꺼풀밖에 없어보이는 인물들에겐 가족도 없고,사회도 없고,과거와 미래도 없다.내일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굵고 짧게 살려는 그들에겐 세상의 가치란 아무 것도 없고,인생과 사랑도 없고 추억만들기도 없는 대단한 허무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많은 갱영화처럼 폭력을 미화하진 않는다.아서 펜감독은 폴 뉴먼을「빌리 더 키드」로 캐스팅한 그의 첫영화 『왼손잡이 권총』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범죄자에 대해 대단히 냉소적이다.
마지막 장면이 참혹하다고 당시엔 미국에서 말이 많았는데 요즘보면 기관총에 맞아 벌집이 되어 죽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모습도만화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들의 눈이 이젠 대량살상 영화에 너무나 잘 훈련되었기 때문이리라.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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