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한 집을 건지는 묘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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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3국 하이라이트>
○·구 리 9단(중국) ●·박영훈 9단(한국)

장면도(173~198)=벌써 십 수년 전일 게다. 미국의 한 경제학 교수가 끝내기 문제를 들고 서울을 방문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게임 이론’으로 바둑에 도전한 것이다. 그의 끝내기 문제는 어려웠다. 신산(神算) 이창호 9단조차도 “집에 가지고 가서 봐야겠다. 다섯 시간은 걸릴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신비스러운 계산력을 지닌 전성기의 이창호도 미국인의 문제에 골머리가 아팠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해프닝은 곧 잊혀졌다. 바둑도 약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늙은 대학교수가 어떻게 그런 고난도 문제를 만들 수 있었을까, 게임 이론과 바둑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고 흥미를 가질 만도 했지만 ‘끝내기’라는 약점 때문에 조명을 받지 못했다. 끝내기를 소소하게 보는 경향은 프로기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구리 9단도 미세한 승부만 되면 약한 면을 드러낸다. 그 역시 끝내기 쪽은 좀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188로 단수하고 190 넘은 것은 크고도 개운하다. 하지만 이것은 기분뿐. 190은 ‘참고도’ 백1로 빠지는 것이 반상 최대 (역끝내기 5집)였고, 이랬으면 백승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구리는 흑이 단순히 197에 젖히는 정도를 생각했지만(이 경우는 190과 비슷하다) 박영훈 9단은 195로 먼저 끊는 묘수를 찾아냈고(A쪽의 이득) 여기서 구리는 또 한 집 이상 손해를 봤다. 드디어 극미의 형세가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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