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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 디자인한 그 남자, 카림 라시드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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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 기업들은 디자인을 선택할 때 보수적입니다. 과감하지 못해 좀 아쉽습니다.”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48·사진)의 말이다. 그는 소니·프라다·겐조·한화그룹·현대카드의 제품 혹은 CI(기업 이미지 통합)를 디자인했다. ‘2008년 하우징브랜드페어’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15일 단독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업이 왜 디자인에 투자해야 하는가.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1980년대 기업들은 ‘미투(me too)’ 전략으로 일관했다. 당시에는 위험을 낮춰야만 실패를 면할 확률이 컸다. 그러다 보니 기술도, 디자인도 엇비슷해졌다. 이제는 남과 비슷하면 실패한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려고 높은 위험 부담을 감수한다.”

-여러 나라 기업과 일했다. 한국 기업의 특색은.

“한국 기업들은 열정적이다. 하지만 종국적으로는 디자인을 선택할 때 보수적이다. 너무 안전한 결과물을 중시한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려 한다. 물론 기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게 중요하다. 그러나 좀 더 과감한 면이 아쉽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들은 해보려는 의지가 커서 가능성이 있다.”

-디자인 경영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가.

“대기업이지만 작은 기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 미국에는 큰 기업 안에 독립된 소기업처럼 조직을 운영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작은 조직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쉽다. 2000개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의 경우, 1%(20개)라도 과감한 디자인 혁신을 해 보라. ‘한정판’ 형태로 시도하다 보면 아이디어를 얻고, 더 발전시키면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장기와 단기 디자인 전략을 나눠 짜야 한다. 보통은 몇 달 후 전시회에 출품하겠다는 시한을 두고 디자인을 한다. 몇 달 뒤의 것과 몇 년 뒤를 내다보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미래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4~5년짜리의 연구도 해야 한다. 또 제품 생산 첫 단계부터 디자인을 시작해야 한다. 기술과 사양을 다 정해 놓고 껍질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함께 제품을 만들어 가는 게 요즘 추세다.”

-제품 값이 비교적 싸다.

“가장 좋은 디자인은 대중이 많이 소비하는 디자인이다. 이른바 ‘디자인 민주주의(designocracy)’다. 많은 사람에게 삶의 기쁨을 주는 게 내가 디자인하는 동기다. 작품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1만원대의 쓰레기통이다. 전세계적으로 500만 개 이상 팔렸다. 30달러짜리 청소기는 지난해 미국에서 300만 개가 나갔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이광재 레몬트리 기자

◇카림 라시드(Karim Rashid)=이집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이로·파리·런던·캐나다에서 자라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했다. 30여 개국의 400여 기업과 함께 디자인 작업을 했다. 70여 개국에서 제품이 팔린다. 가구·가전제품·패션·제품포장·호텔·식당 등 다방면에서 일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 14개 유명 미술관에 작품 70여 점이 영구 전시돼 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차를 몰지 않는다. “검정은 암울하고 비관적인 색”이라며 지난 세기 말 검정색 옷을 모두 버리고, 옷장을 핑크와 흰색으로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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