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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의사가 그것도 모를 줄 아냐,이년아!」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민우는 꾹 참았다.또 칼질당할 것 같아서였다.
『자웅동체! 한 몸 속에 남녀가 같이 있는 거지! 헤르마프로디티즘은 가장 완벽한 인간! 곧 신같은 존재를 얘기해! 바로 나같은 존재를 말하지.』 『주미리도 네가 죽였냐?』 『그래,내가 죽였지.그년은 너무 이쁘더구만,그런데 이미 네 놈이 건드려서 그냥 목숨만 뺏었어! 아깝긴 하지만 신이 인간이 이미 손 댄 찌꺼기를 먹을 수는 없는 거지.』 『미친 년아! 왜 죽였어! 무엇 때문에….』 민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키려했으나 손만 아프게 조여올 뿐이었다.민우의 오른쪽 목덜미가 서늘해지면서 쓰라렸다.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한 번만 더 큰 소리를 치면 바로 목을 따버리겠어!』 민우는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왔다.주미리가 죽은 후에 주미리 살해범으로 몰리면서 이상하게 민우는 주미리의죽음에 대해 애석해하거나 분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었다.거짓말같이 그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으면 서 마음이 평온했던것이다.물론 그 후 만나게 된 수많은 다른 여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그런데 지금 범인을 만나게 되니 갑자기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쳐 올랐다.
『그년은 내 인생을 망쳐놨어.난 신같은 존재라 이 세상에 신의 은총을 베풀어야 하는데 그년이 완전히 망쳐버렸지,그년은 집요하게도 신의 능력을 죽여버렸어.그년이 주는 약을 먹으면서부터는 도대체 신의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거든….너 희들 정신과의사는 다 신의 세계가 이 땅에 도달하는 데는 악마같은 존재들이야.』 민우는 정신이 아득해졌다.이건 장난이 아니다.이 놈은체계적으로 굳건하게 고착된 망상을 갖고 있다.과대 망상이 편집형으로 이어진 정신분열증 환자인 것이다.채신이 잠시 씨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신의 세계가 별거겠어.다 정신병자의 환상과 망상으로 이루어지는 게 신의 세계 아니야! 심판의 날에는 메시아가 구름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야.구름타고 내려오는 메시아를 인간들이 보려면 인간들 모두가 미쳐야 해! 전세계사람들이 모두 집단 환각 증세를 일으켜야 한다구….그게 무슨 뜻이야.세상 사람들이 다 미쳐야 심판의 날이 오고 새 하늘 새땅이 도래한다는 말 아니야.그러니까 이 더러운 인류를 구원하는길은 정신병 속에 있어.온 세상 이 미치면 환상과 기적이 가득하고 그러면 이 더러운 세상은 새롭게 바뀌는 거지.그러니까 세상이 미쳐갈 때는 미쳐가게 내버려 둬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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