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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身土不二만으론 안된다 농수축협 새 진로 고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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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생산자단체인 농.수.축협은 요즘 「신토불이」(身土不二)말만 나오면 가시방석이다.어렵사리 「이데올로기」쯤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새 용어의 무게가 홍수처럼 밀려들어오는 값싼 수입농수축산물의 대세 앞에 갈수록 무력해지고 있기 때문.신토불 이는 2~3년전만해도 수입농산물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농.수.축협의 입지도 강화시켰다.시대는 그러나 농.수.축협이 신토불이만 외치고 있기에는 곤란한 상황으로 가고 있고 이 때문에 이들 기관 내부에서 자중지란(自中之 亂)비슷한 사례들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농협의 수입농산물 취급=지난해부터 농협은 농산물 가격이 치솟을 때마다 농산물유통공사가 들여온 중국산 마늘.양파.고추 등을 「신토불이」간판을 내건 매장에서 팔아야 했다.이에 대해 농협은 재정경제원이 물가안정차원에서 협조를 요청해「 울며 겨자먹기」라고 변명한다.
농협은 또 자체 공판장에서 수입 바나나를 취급했다 「신토불이」정신에 어긋난다는 여론에 굴복,지난해부터 바나나 취급을 중단했으며 지난달 13일부터 세차례에 걸쳐 오렌지를 수입했다 또다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오렌지 수입은 국내산 오렌지가격의 폭락을 유발했다.
농협은 또 우리밀과 우리콩살리기 운동의 현실을 보고 더욱 침울하다.대표적인 신토불이 운동으로 불붙이려고 89년 이래 6년넘게 이 운동에 발벗고 나섰으나 결과는 희망적이지 못하다.
지난해 우리밀 생산은 5천t 규모로 자급률이 0.1%에 그쳤다.우리밀의 값(㎏당 2천원)은 국제가격(5백원)의 네배다.
콩의 경우도 여덟배나 비싸다.
◇축협.수협의 고민=지난해 美.호주등에서 수입한 쇠고기는 총12만t으로 국내시장 점유율이 46%였다.이에따라 축협은 「고품질.고가.신토불이 쇠고기」로 수입고기와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한우고기값(㎏당 도매가 8천2백원 수준)이 수입육(㎏당5천원선)의 1.6배에 달해 점차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고민이다.일본의 「화우」가 고가정책을 고수하다 최근 미국의 값싼 쇠고기와 고급육인 냉장육에 눌려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있는현상을 축협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한우 가격이 93년 이후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것을 좋아라 할 처지가 못 된다는 실토다. 무엇보다 축협은 신토불이 운동이 극소수 상류층을 위한 고가(高價)무공해 농축수산물 공급으로 변질됐다는 비난에 고심하고 있다.최근 독일등에 극소량이나마 한우고기 수출을 추진했던 것도일부 생산자와 국내소비자들의 이같은 비난을 벗어나 보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수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국내의 바닷고기 자원이 고갈돼 대중어종인 동태.오징어마저 수입품이 판치는 바람에 신토불이라는 말이 입밖으로 안 나온다.
◇生消不二.農都不二=최근 농협은 신토불이 대신 농민과 소비자가 공존공영하자는 뜻의 「생소불이」(生消不二),농촌과 도시가 함께하자는 「농도불이」(農都不二),농업과 공업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농공불이」(農工不二)등을 내세우며 새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농협은 최근 도시소비자를 위한 농산물 가격파괴형매장인「하나로 클럽」을 서울 종로.도봉구등 네곳에 설치했고 매장을 전국 1천여곳으로 늘릴 예정이다.도농불이 개념이다.
그러나 생산자인 농민들의 반발에 또다시 부닥치고 있다.생산자단체가 농민이 재배한 농산물가격을 높게 받도록 북돋워 주지는 못할 망정 가격 파괴로 농민을 죽이는 데 앞장선다는 논리다.도봉구 하나로클럽 매장의 경우 인근의 단위농협 매장 에서 『누구를 죽이려는 것이냐』는 불만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수협과 축협이 가격파괴 할인점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실행단계에서 잇따라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金是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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