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숭례문은 국가 예산으로 복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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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불타버린 ‘국보 1호’ 숭례문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취임 후 공식적인 모금운동을 펼치기로 했다고 인수위가 이날 밝혔다. 그러나 숭례문 복원은 국민의 성금이 아니라 정부 예산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국가의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예산을 편성해 세금으로 집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복원은 정부의 기본적인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국가 예산이 아닌 성금으로 해야 할 타당한 이유를 우리는 찾기 어렵다. 과거의 예를 보아도 그렇다.

성금은 크게 세 가지 경우에 동원됐다.

첫째,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업인데 재원이 모자라는 경우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국방력 증강을 위해 기업들에서 거두었던 방위성금이 그 예다. 둘째는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예산을 투입하기엔 적절치 않은 경우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는 국민의 뜻을 한데 모을 국민통합의 이벤트가 필요한 경우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독립기념관 건립 성금과 북한의 수공(水攻) 위협을 과장하기 위한 평화의댐 건설 성금이 그랬다.

당선인의 제안은 셋째의 ‘국민통합 이벤트’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는다. 당선인 자신은 “정부 예산보다는 국민이 십시일반 참여하는 성금으로 복원하는 것이 국민들에게도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숭례문 화재는 국가의 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일 뿐이다. 국보 1호를 일반에 개방해놓고 문화재청과 서울 중구청이 관리를 소홀히 했고, 소방방재청이 사전 준비를 게을리 하고 현장 대처를 잘못한 탓이다. 이를 복구할 재원을 성금으로 메우면 국민에게 위안이 될 것이라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잘못은 정부가 해놓고 공연히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성금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나서서 주장하면 혹시 기업들이 앞다투어 납부하는 준조세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정부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을 혼동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