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극 노래 만들다 환경 지킴이 됐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억만년 전의 지구 비밀 억만년 후의 미래,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신비 속의 남북 극지.”

서울에서 1만7240km 떨어져 있는 극한의 남극대륙. 그곳에 들어선 세종기지에는 매일 아침 작곡가 정풍송(鄭豊松·67·사진)씨가 만든 ‘신비속의 남북극지’란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가수 인순이가 부른 이 흥겨운 노래에는 남극에 대한 사랑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담겼다. 실제로 정씨는 최근 지구온난화로 환경 재난을 겪고 있는 남극 땅을 직접 밟기 위해 11일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17일 세종기지에서 열리는 창설 20돌 축하행사에 참가한다. 녹아가는 남극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는 그를 출발 전에 만났다.

사실, 정풍송이란 이름 석 자는 낯설지 몰라도 그의 노래는 누구나 안다. 바로 조용필의 히트곡 ‘허공’ ‘미워 미워 미워’ 등을 만든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그가 남극과 환경 문제에 빠지게 된 것은 2003년 12월 신문에서 “남극 세종기지의 전재규 대원이 동료를 구하다 숨졌다”라는 기사를 본 뒤부터다. 뭔가 해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몇 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난해 말 극지연구소에서 세종기지 창설 20주년 기념으로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워줄 앨범(둥근 사진)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텔레파시가 통한 거 같았어요. 그 자리에서 좋다고 했죠.”

곧바로 절친한 가수 인순이에게 전화해 노래를 부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극지연구소 홍보대사 역할도 흔쾌히 수락했다.

“마치 순풍에 돛 단 듯 일이 술술 잘 풀리더군요. 신기했어요. 그래서 고심을 거듭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곡을 짓고 노랫말을 썼어요. 남극의 뒤뚱거리는 귀여운 펭귄은 물론 북극의 하얀 북극곰도 떠올리며 노래를 만들었어요. 남극 세종기지뿐 아니라 북극의 다산기지도 고려한 것이지요.”

왜 남극에 빠져들었는지를 물어봤다.

“남극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에요. 모든 것이 태초의 모습 가깝게 보존돼 있다고 하더군요. 인간은 지금까지 조금 더 편하게 살아보려고 지구를 망쳐왔어요. 이젠 남극의 빙하마저 녹고 있지요. 지켜내야 합니다.”

그는 후배 연예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나누는 데 동참해야 한다”며 환경운동에 힘을 보탤 것을 권유하고 다닌다. 대중문화와 환경운동을 퓨전한 환경·문화 전도사를 자처한 것이다.

중학생 때 짝꿍이 흥얼거리던 ‘가고파’를 듣고 감동한 그는 “나도 저런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서라벌예술대(중앙대 예술대 전신) 작곡과에 들어가 ‘가고파’를 만든 김동진 교수에게 배웠다.

대중가요를 택한 것은 대중이 친숙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든 미국 가곡의 대가 포스터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1960년대 중반 ‘아마도 빗물이겠지’로 데뷔, ‘웨딩드레스’ ‘찻잔의 이별’ ‘갈색 추억’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발표한 곡이 2000곡이 넘지만 아직도 꿈이 있다.

“좀 더 국제적인 음악, 서양에서도 히트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그의 히트곡 ‘허공’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이 곡은 원래 1979년 12·12사태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꺾였을 때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라는 가사는 바로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실은 노랫말을 지을 때 ‘그대’가 아닌 ‘민주’라고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70년대에 정부를 욕했다는 누명을 쓰고 고초를 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대’라고만 했죠. 노래가 나오자마자 큰 히트를 쳤는데, 아마 대중도 이심전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이로니컬한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5공 주역의 한 명인 허문도씨가 ‘허공’의 대단한 팬이라며 그를 초대한 것.

“5공 핵심인사 10여 명이 돌아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너희의 등장을 슬퍼하면서 만든 노래인데’라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고…”

그는 남극에 도착하면 악상이 마구 떠오를 거 같다고 했다.

“카메라는 물론, 악상을 받아 적을 오선지와 연필도 가져갑니다. 가슴이 너무 뛰어요. 우리가 잘 지켜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그 원시의 땅…”

글=전수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