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회, 투자회사로 변신 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행정공제회 이형규 이사장은 요즘 쏟아지는 ‘청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탁의 내용은 “투자해 달라”는 것이다. 공제회가 각종 돈 되는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거두자 곳곳에서 투자 요청이 몰리면서다. 이 이사장은 “국내외 부동산, 기업 M&A, 문화사업 등으로 투자 분야를 넓히자 투자 요청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은 행정공제회와 함께 3대 공제회로 불리는 군인·교직원 공제회도 마찬가지다. 이들 공제회는 수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큰손’이다. 게다가 각종 연기금보다 규제가 적어 비교적 결정이 신속하다. 투자 분야도 다양하다. 우리투자증권 조병주 M&A 1팀장은 “공제회가 회원들의 돈을 굴려주는 수준에서 벗어나 빠르게 투자회사로 변신 중”이라고 평가했다.

◇‘큰손’으로 부상한 공제회=1990년대부터 이들 3대 공제회의 자산가액은 조 단위를 넘어섰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산을 채권이나 회원들을 위한 부동산 투자에 한정해 수익률이 높지 않았다. 덩치값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외환위기 후 군인공제회가 먼저 ‘변신’에 불을 댕겼다.

회원들을 위한 주택사업에서 노하우를 쌓은 군인공제회는 헐값으로 나온 각종 부동산을 사들인 데 이어 중부리스(현 한국캐피탈)를 인수해 금융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인 진로·해태제과·성동조선해양 등의 지분도 사들였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이들 회사가 순조롭게 상장할 경우 엄청난 평가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군인공제회는 또 3월로 예정된 쌍용건설의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며, 자회사인 대한토지신탁을 통해 자산운용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행정공제회는 뒤늦게 변신에 시동을 걸었지만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LG카드·미래에셋생명·대우건설의 지분을 사들여 짭짤한 재미를 봤다. 지난해엔 영화관 체인인 메가박스, 두바이·뉴욕 등지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5조원 규모의 판교 상업지구, 1조5000억원 규모의 광명 역세권 개발권도 따냈다. 마이어자산운용을 설립해 금융업에도 발을 디뎠다. 이 같은 활발한 투자로 행정공제회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386억원)보다 약 세 배인 1089억원을 기록했다.

8개 자회사를 거느린 교직원공제회는 덩치가 가장 큰 만큼 발걸음은 다소 느린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 발 빠르게 채권 비중을 줄이는 대신 주식 비중을 늘린 게 주효했다. 순이익이 4289억원으로 전년(1609억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는 것이다. 3개 공제회 중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도 가장 활발하다. 교직원공제회 박경석 팀장은 “올해는 해외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직 전문화가 과제=삼성증권 관계자는 “몇 년 새 공제회가 활발하게 투자활동을 벌이는 것은 안정적인 자산운용으론 원하는 수익률을 올릴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타 금융회사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 할 경우 공제회 자체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가 다양해지고 있는 건 바람직하지만 투자에 대한 판단이나 위험관리에 전문성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팀의 인력이 4~5명으로 투자 규모에 비해선 적은 편”이라며 “투자 담당 부서의 전문성 강화와 인력 보강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