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상 예술상 수상 백남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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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내 나이는 먹었어도 비디오 예술은 아직 유년기야.한 10년은 할 일이 남아있어.』 비디오아트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있는 백남준(白南準.63)씨의 시간과 세계에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흥미진진한 일도 무궁무진한 것처럼 보인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인 비디오아트의 길을 걸으면서 세계적 미술상(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아 그 업적과 실력을 인정받았던 백씨가 이번에는 국내의 권위있는 호암상(湖巖賞)예술상을 수상했다.
21일 호텔신라에서 헐렁한 모직와이셔츠에 빗지않은 머리 그대로 나온 백씨는 『호암상은 나같이 아티스트 플러스 영세사업가같은 사람들에게 특히 의미있는 상』이라며 수상소감을 말했다.
국내외로 명성이 높아지면서 돈도 꽤많이 모았을 것 같지만 그는 자신이「전형적인 예술가」는 아니라며 여전히 비디오 아트일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나이가 들면서 한국미술계에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그의 비용지출항목을 하나 더 늘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뉴욕에 한국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열었던 복합문화제 나이맥스전시,그리고 지난93년 자신이 25만달러를 내놓아미국 휘트니비엔날레 한국유치에 공헌한 일도 그중 일부다.당시까지 미국밖을 한번도 나간 일이 없는 휘트니 비엔 날레의 한국유치는 뉴욕미술계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일대 사건으로 백씨의 국제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네번씩 보러 온 사람도 있었다더군.요즘같이 바쁜 시절에 네번을 찾아왔다면 무엇을 챙겼어도 챙겼을 것 아냐.』 시작할 때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다음부터의 일은 예술가 자신,보는사람 자신의 몫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모습에서 오랫동안 서구사회에서 살면서 몸에 밴 개인주의.합리주의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이 늘어야 하지만 많다고 해서 꼭 결과가좋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 84년 뉴욕.파리.베를린.서울에 생중계된 우주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국내에 크게 소개된 백남준씨는 그후 국내에서의 활동폭을 넓혀 최근엔 미술계의 몇몇 굵직한 사안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오는 9월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도 그중 하나.백씨는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행사 하나를 맡아 진행중에 있다.
『비엔날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개의 조건이 있어.미술시장과창조적 예술가들이 있어야하고 개최도시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가 있어야 해.서울이나 도쿄(東京).베이징(北京)등 동양권에서 이런 3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도시는 없어.
동양 에서는 어디서 해도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지.광주의 경우는그래도 국내융화(融化)라는 부산물이 있어.1천만달러 정도 써서국내용 만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서 조건부로 참여했지.』 그가 밝히는 조건이란 총경비의 7%를 특별전시비용으로 내놓으란 것.그렇게하면 세계미술사에 광주비엔날레의 이름을 한줄 남길만한 행사를 치를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액티브 인 아트 앤드 툴메이킹』(Interactive in Arts and Toolmaking)이라고 이름붙인 그의구상은 비디오아트의 차세대주자가 될 쌍방향대화형 비디오아트를 세계최초로 전시하는 것.예를 들면 TV브라운관 앞에서 관객이 자석을 쥐고 스스로 음극선의 변화를 그려보이는 자신의 초기단계쌍방향 대화형 비디오아트에서부터 이미 이방면에서는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를테면 컴퓨터앞에 선 관객이 부는 입김에 따라 화면속의 꽃잎이 흩날리는 프랑스작품 등 최첨단 비디오작업을 한자리에 모아놓을 계획이다.
타인의 시선은 철저하게 무시하지만 세속적 관심이나 유행의 흐름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자신의 일을 펼쳐온 백남준씨는 세계미술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작가다. 몇년전부터 준비에 착수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부근의 비디오아트 미술관신축계획도 미술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그의 노력의 하나다.
『비디오아트는 말하자면 2년마다 새로운 종류의 물감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분야지.나는 한 10년 더 일할게 남아있어.이 미술관은 내가 죽든 살든 2007년이면 개관할거야.』 현대미술을 이끌어 가는 유명한 작가지만 백남준은 생활인으로서는영점에 가깝다.뉴욕 소호거리의 스튜디오에서 밤늦게까지 작업하다잠들어 오전 10,11시나 돼야 일어난다는 그는 기상후에 신문보는데 두어시간씩 보내는 게 보통이다.
『예술가는 좀 게을러야 해.그래야 이것저것 궁리할 시간이 많지.』 글 =尹哲圭기자 사진=金允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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