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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구 1주택 양도세 감면 영향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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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30면

일러스트=강일구

#서울 대치동에 13년째 살고 있는 김모(59)씨는 양도세 감면이 시행되는 대로 이사를 갈 생각이다. 두 자녀를 모두 출가시켰고, 지난해 정년퇴직도 했으니 고향인 경기도 파주 근처에서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재정계획도 이미 세워뒀다. 살고 있는 집(139㎡, 42평형 아파트)을 현 시세(18억원)에 팔고 파주 헤이리 근처의 타운하우스나 일산 호수공원 쪽에서 지금과 비슷한 면적의 집을 6억∼7억원 안팎에 살 예정이다. 부부의 여가를 위해 인근 골프장 회원권(3억원)도 살 생각이다. 그러고도 남는 약 8억원은 저축은행 등에 넣어 연 7% 정도의 수익률로 굴릴 계획이다. 세금을 뗀 한 달 이자 수익은 약 400만원. 퇴직금·국민연금 등과 합치면 부부의 노후생활에 부족함이 없다고 김씨는 보고 있다.

매물 늘리려다 집값 올릴라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사는 이모(41)씨는 강남이나 목동 쪽으로의 이사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 초등학교 5, 3학년인 두 자녀의 교육을 위해 더 늦춰서는 안 될 것 같아서다. 지금 사는 집(103㎡, 31평)을 판 돈(5억5000만원)에 그동안 모은 1억5000만원을 더하고, 3억원가량을 대출받으면 비슷한 규모의 집을 장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씨는 최근 양도세 감면 논의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세금을 줄이면 매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니, 값도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다.
 
새 정부 부동산 정책 가운데 처음으로 양도세 감면이 확실해졌다. 6억원 이상인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가 대상이다. 통합신당과 한나라당은 최장 15년 보유 시 45%인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20년 보유 시 80∼100%로 늘리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6억원을 넘는 주택은 14만7000채지만, 양도세가 실거래가로 매겨지는 점을 감안하면 몇 만 채가 추가될 전망이다. 공제율을 80%로 가정하면 이들 주택에 대한 양도세 실효세율이 양도차익의 6.8%에서 4.9%로 감소하고, 평균 세액은 3100만원에서 2350만원으로 줄어든다. 양도세 감면 방안은 양당이 당초 2월 통과를 추진했으나 감면 폭에 대한 조율과 1조3000억원이 넘는 지방세 결손을 메울 방안이 마땅치 않아 6∼7월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매물 늘어나나

인수위는 “양도세 인하로 부동산 거래의 물꼬가 터지면 매물이 많이 나와 거래가 활성화하고 가격도 안정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고 싶어도 세금이 무서워 못 가는 사람들, 특히 노령층이 집을 내놓은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지난해 말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전 국민의 9.3%에 이른다. 이 비율을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아파트(24만4000여 가구)에 적용하면 2만2000여 채가 된다. 양도세 인하는 고정수입이 없는 이들 중 상당수에게 집을 팔고 수도권 위성도시나 남한강 인근 시·군 등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계청 인구이동 조사에 따르면 2001년 이후 60세 이상인 사람들이 서울에서 신도시로 20만 명, 기타 시·군으로 10만9000여 명이 빠져나갔다.

문제는 시장이 정부의 머리 위에 있다는 점이다. 당장 급한 사람은 양도세 인하를 기다려 집을 처분하겠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은 종부세 등 추가적인 세제 완화를 기대하고 오히려 매각을 늦출 가능성이 있다. 이런 경향은 매각 압박을 심하게 받아온 1가구 다주택자에게 더욱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김재언 삼성증권 컨설턴트는 “새 정부가 매각을 유도하려는 강남의 고가주택 보유자들은 세금이 좀 늘어나도 감당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며 “양도세 인하가 ‘규제완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면 오히려 매물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양도세 완화가 “전반적인 세제완화 쪽의 시그널을 준다면 감당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비투기지역에서의 전매제한 폐지와 1가구 2주택자 양도세 완화 등이 여야에서 추가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 특유의 상속문화도 걸림돌이 된다. ‘자식들의 미래 자산’인 주택을 부모가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집을 담보로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받아 쓰는 역모기지론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해 7월 시판한 역모기지론 가입자는 넉 달간 400여 명에 불과했다.

고가 주택 수요 자극 우려도

양도세 인하라는 동전엔 양면이 있다. 매물 증가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도 자극하기 때문이다. 양도세 인하는 신규 주택 구입자에겐 집을 팔 때 얻을 차익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최근 1∼2년간 잠잠했던 강남권 고가 주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의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가격이 6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은 전체의 8.52%인 51만1801채이지만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의 ‘버블 세븐’ 지역에 치우쳐 있다. 서울의 대상 가구 35만1317채 가운데 강남(8만3848채), 서초(5만3602채), 송파(5만6962채) 등 강남권이 55%를 차지한다. 경기도(15만1465채) 역시 분당(4만9171채), 용인(3만3781채), 과천(8814채) 등이 집중적으로 혜택을 받는다. 박상준 리얼티랩 소장은 “이들 지역의 거래비용이 떨어지면 수요가 늘고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강남-서울-수도권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인 상태에서 이들 지역의 상승이 수도권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가격은 0.3%, 서울은 0.7% 상승해 대선 전보다 오름폭이 커졌다. 대선 전 하락세였던 6억원 이상 고가 주택도 상승세로 반전됐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양도세 감면의 혜택이 특정 지역에 치우쳐 있고 대상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작아 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만큼의 매물 증가는 어려울 것”이라며 “매도자와 매수자의 동상이몽으로 호가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는 시장에 확실한 방향성을 주기엔 미약한 신호”라고 말했다. 총선 뒤 정책방향과 추가 규제완화 여부를 확인하려는 관망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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