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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분양가 원가 공개' 반대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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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파트 분양가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논쟁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상암지구의 아파트 원가를 공개한 뒤 시민단체들의 공개 요구는 더욱 뜨겁다. 공기업이 40% 정도의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민간 건설업체는 더 많은 폭리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추측과 함께 서울시가 건축공사비를 부풀렸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주택건설 업계는 물론 이헌재 경제부총리 등은 원가 공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분양가 원가 공개는 소비자의 알 권리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나 기업의 영업비밀 공개, 기업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공급 감소 및 시행상의 문제점 등이 제기되고 있다. 무리하게 원가를 공개하게 하면 최초 분양자가 부담하는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나 기업활동의 위축으로 공급이 줄어 주택가격이 상승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바꿔 말하면 현재 주택업체가 차지하는 이윤을 최초 분양자에게 안겨줄 뿐이며 대다수 소비자는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하게 된다.

우선 민간기업과 공기업은 토지 취득 가격이 다르다. 공기업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면 시장가격보다 싸게 토지를 강제수용하지만 민간 건설업체는 시장가격으로 매입한다. 아파트 인허가 과정도 공기업은 민간기업보다 짧은 기간 내에 적은 비용이 소요돼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원가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민간 주택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일부 업체와 시행사가 주택 수요가 많은 강남지역에서 과도한 이윤을 남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2년간 주택업계가 호황을 누려 이익이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 3년간 주택사업을 시행한 700여개 업체의 2002년도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매출은 74% 증가한 반면 자기자본이익률은 25% 증가했다. 즉 매출은 높은 신장세를 보였으나 이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아 수익성이 높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같은 해 주택건설업과 제조업의 자기자본이익률을 비교하면 주택건설업은 16.5%인 반면 제조업은 17.3%로 오히려 제조업보다 낮아 주택업체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택건설업은 주택경기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위험이 큰 사업이다. 매년 수백개 업체가 도산하고 수백개 업체가 새로 생기는 부침이 심한 업종이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전후해 내로라하는 대형 업체들이 도산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주택건설업의 자기자본비율은 제조업의 3분의2 수준이며 부채비율은 제조업의 세배 정도로 위험이 큰 사업이다. 타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경기 부침에 따라 도산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으며 따라서 사업 위험이 매우 크다. 분양가 원가 공개 제도는 기업의 불확실성을 증가시켜 주택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득보다 실이 많은 제도다.

세계 어느 곳에도 분양가를 규제하거나 원가를 공개하는 나라는 없다. 단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가 위기상황인 경우 임대료를 통제하는 나라는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3년 영국 등 일부 국가가 임대료 통제제도를 도입했다.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뒤엔 미국 등 대부분의 참전국이 임대료 통제제도를 도입했다. 임대료 통제란 국가가 단기간에 재정적인 이유 등으로 주택을 건설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도록 동결한 것이다. 이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에 국민적인 합의를 토대로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도와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주택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임대료 통제제도는 오랜 기간 지속됐다. 정치적인 이유로 임대료 통제를 해제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악순환으로 시장을 왜곡한다. 선진국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중해야 할 것이다. 현재 주택시장 상황은 정부의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과 함께 주택의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할 때다.

고철 주택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