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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6자회담 성과 4개국 전문가 e-메일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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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지난달 25일부터 4일간 열렸던 2차 6자회담의 성과를 놓고 논란이 많다. 회담은 ▶6월 말까지 3차 회담 개최▶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자그룹 개최 등에 합의, 성과가 있다는 평이 있지만 핵프로그램의 폐기를 놓고 북한, 미국의 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아 실질 진전은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회담 참가국인 미.중.러.일 4개국 전문가들과 긴급 e-메일 좌담을 했다.[편집자]

*** 조엘 위트 美 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 "北 시간끌기는 아닌 듯"

① 예상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특히 미국과 북한이 상대방에 자기 입장을 보다 상세하고 광범위하게 설명할 기회를 가진 점이 중요하다. 양측 수석대표가 따로 만나 장시간 대화한 것과 향후 회담을 준비할 실무그룹을 만든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② 회담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점은 출발 당시부터 제기돼 온 만큼 재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아무런 기준없이 표류한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시 행정부가 서서히 방향을 수정하면서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 본다.

③ 북한이 올 연말 미 대선에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끌고 있다곤 보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은 정권이 교체돼도 다른 나라와 체결한 협정은 준수하도록 돼 있다. 북한도 그런 사실을 안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핵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일단 사찰이 시작되면 그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방향 변화를 시사한 것이다.

④ 실무그룹 결성은 잘한 일이지만 큰 이슈들은 결국 6자회담에서 정리될 것이므로 중요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무그룹이 만나 대화 기조를 유지한다면 차기 회담 개최가 쉬워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리=김종혁 특파원

*** 양보장 中 국제관계연구소 주임 "북.미 직접 접촉은 진전"

① 회담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중요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관련 국가들이 인식을 넓히고, 실무그룹을 가동해 대화를 지속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소득이 있었다. 다음 회담에선 이번에 해결하지 못한 각국의 관심사와 현안 등을 풀어가는 기회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② 가장 큰 문제는 북.미 간 이견이다. 뿌리 깊은 상호 불신과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핵심 문제다. 대선이 코앞에 닥친 미국으로선 북한과 타협할 수도 없고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없다. 북한과 대화해야 하지만 성과를 이끌어낼 수도 없는 처지라는 얘기다. 회담에서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계획 파기(CVID)'를 북한이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는 문제의 절반만 건드린 것이다.

③ 역사적인 감정과 냉전 시대의 암영(暗影), 현실적 이해 등을 고려할 때 한두 차례 회담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후 회담은 더 구체화되고,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닌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발전할 것이다.

④ 실무그룹은 참가 인원이 국(局)급 이상의 고위 외교관이 돼 비중이 커질 수 있고, 북.미 간 상시 채널로 사용될 수도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 그룹에서 논의될 핵심 쟁점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보유 여부가 될 것이다.

정리=유광종 특파원

*** 구라타 히데야 日 교린大 교수 "HEU(고농축 우라늄) 문제 못 풀어"

① 6개국은 북한의 핵포기를 위한 공통적인 밑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다음으로 넘겼다. 회담 뒤 채택된 의장성명은 '합의를 못했다는 것에 대한 합의'에 가깝다. 특히 '핵무기 없는 한반도'란 문구는 북한식 표현으로, 한.미.일이 목표로 하는 '핵의 비군사적 이용까지도 포기한다'는 개념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는 큰 차이가 난다.

②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계획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아 회담 성과가 없었다. 북한이 HEU계획을 인정하고, 모호한 표현이나마 HEU 포기를 시사하지 않는 한 미국으로선 합의문서에 서명할 수 없었다.

③ 의장성명에서 '핵무기 없는 한반도'라고 표현한 점은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 지적하는 HEU를 '고농축(무기급) 우라늄'이 아니라 '저농축(비군사적인 평화적 이용) 우라늄'이라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거래를 하려 들지 모른다.

④ 실무그룹은 힘이 없어 뭔가를 타결하려면 3차 6자회담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실무그룹 회의를 자주 여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다자 간 대화채널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리=오대영 특파원

*** 바실리 미헤예프 러 극동연구소 부소장 "연내 성과 기대 못해"

① 굳이 이번 회담의 승자를 꼽자면 북한이다. 미국 대선까지 시간을 벌었고 회담 참가를 조건으로 중국에서 경제 원조를 받아냈다. 다른 참가국들은 해결 기미 없는 북핵 문제를 그대로 떠안았을 뿐이다.

②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은 점에서 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것은 당연하다. 회담에서 평양이 주장한 해결 방안의 문제는 핵을 이용한 위협과 공갈의 효용성을 증명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핵위기라는 표면적 현상에만 집중하고, 북한의 시장경제화와 남북통일 같은 근본 해결책에 협상을 연계시키지 못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③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3차 회담에서도 시간 벌기로 나올 것이고 미국도 '외교로 해결한다'는 원칙만 되풀이할 것이다.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서는 5자가 폭넓고 잘 조정된 입장을 공유해야 하는데 이게 없기 때문이다.

④ 실무그룹은 3차 회담 준비를 위한 연락채널 역할에 그치고 실질적 의미는 별로 갖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 실무그룹에 낮은 지위의 외교관들을 파견할 것이며 이들은 독자적 결정권이 전혀 없다.

정리=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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